60년 이어온 막국수 한그릇에.. 철원의 생활, 음식을 떠올렸다[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8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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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군 갈말읍 ‘철원막국수’의 대표 메뉴인 물막국수. 김도언 소설가 제공
강원 철원군 갈말읍 ‘철원막국수’의 대표 메뉴인 물막국수.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강원 철원군은 분단과 남북 간 대치의 표징 이미지가 짙다. 누구나 철원 하면 군부대, 철조망, 비무장지대(DMZ) 등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고읍 본래의 감수성이 가려져 있다. 고구려의 부활을 꿈꿨던 궁예가 도읍지로 삼았을 만큼 비옥한 땅, 전북 김제시와 더불어 한반도 남쪽에서 지평선을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평활지라는 사실은 너무나 쉽게 망각된다. 역사적으로 부흥했던 철원읍 지역(구철원)이 6·25전쟁 이후 민간인출입통제선에 수렴되고서는 갈말읍이 신철원이라는 이름으로 철원의 중심지가 됐다. 그럼에도 타지 사람들은 이곳에 생활이 있고 문화가 있고 음식이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철원군 갈말읍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시외터미널 바로 뒤편에 막국수를 말아서 파는 집이 있다. 이름도 그냥 ‘철원막국수’다. 같은 상호가 꽤나 여럿인데, 이 집이 그 상호의 대표성을 지니는 것은 틀림없거니와 물경 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다. 막국수는 냉면과 더불어 이북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이에 큰 이견은 없다. 막국수의 기원에 대해선 두어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손님이나 식객이 청할 때 큰 공을 들이지 않고 바로 만들어서 냈다는 점에서 ‘바로 지금’이란 뜻을 지닌 부사 ‘막’과 ‘국수’가 합쳐졌다는 설이 정설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조선료리’라는 북한 책자에 다음과 같이 설명돼 있다.

“우리 인민들은 오랫 옛날부터 국수를 즐겨 먹었으며 … 원산막국수는 강원도 지방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막국수라는 이름은 만드는 데 품을 크게 들이지 않고 막 해먹는 음식이라는 데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그전부터 이 국수는 꾸미(덧붙이는 곁가지 음식)도 고기붙이가 아니라 배추김치, 무김치, 오이, 미나리 같은 남새(채소류)를 쓰고 고명도 따로 없이 김치물에 말아 먹었다고 한다.”

철원막국수는 평일 낮에도 웨이팅이 기본일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현지인들의 자부심도 대단해서 외지인들이 요기할 만한 곳을 물으면 대부분의 주민들이 첫손으로 이곳을 추천한다. 필자가 찾았던 날도 이미 만석이어서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었다. 전형적인 디귿자 형태의 한옥 내부를 요령껏 밥집에 맞게 개량한 것이 무언가 정답고 애틋한 노포 특유의 아우라를 뿜고 있었다.

필자 일행은 대표 메뉴인 물막국수를 시켰다. 사골을 맑고 깨끗하게 우려낸 육수에 메밀면을 말아놓은 것은 다른 막국수와 다를 게 없었는데 얇게 저민 오이, 양념에 재워 숙성시킨 명태채와 상추, 그리고 푸짐한 통깨가루를 고명으로 올린 것이 눈을 매료시켜 절로 입맛을 다시게 했다. 한 젓가락 떠 입에 넣으니 단맛과 매운맛이 생각보다 강렬해서 메밀면 고유의 맛을 기대하는 분들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듯했다. 그래도 뒤끝엔 개운한 감칠맛이 확 올라왔다. 양도 참 넉넉한데 가격은 1만 원. 메뉴판 밑에 붙어 있는 식자재의 원산지 표시를 보니 죄다 국내산인데 이 가격을 유지한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막 말아먹는 국수인 막국수는 이제 사철 내내 별미로, 혹은 냉면의 대안으로 독자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누구나 막국수를 한입 떠 넣으면 이북 또는 강원도라는 실재하는 환상 속으로의 디아스포라를 만나게 되리라.

#철원군#막국수#DMZ#원산막국수#전통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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