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민초의 목소리 대변한 ‘저항시인’ 김수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6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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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저항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영(1921∼1968·사진)은 대표작 ‘풀’, ‘폭포’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과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시와 삶은 시대 억압에 맞선 언어의 투쟁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김수영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점차 가세가 기울었고, 열두 살에는 뇌막염을 심하게 앓기도 했습니다. 광복 이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시 창작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1946년 ‘묘정의 노래’로 등단했고, 공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김수영의 삶은 6·25전쟁과 이념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밀려들어 갑니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의용군으로 징집된 그는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생사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가까스로 탈출해 서울로 돌아왔지만, 인천상륙작전 이후 이번엔 인민군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거제 수용소는 전장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좌익과 우익이 서로를 죽이고 매일 아침 시신이 화장실에 떠오르던 그 참혹한 공간에서, 김수영은 인간의 존엄이 정치적 이념에 의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합니다. 이 경험은 그의 시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후 그의 시에서 자유라는 개념을 존재론적 질문으로 끌어올리게 됩니다.

김수영은 시대 억압 속에서 타협하거나 저항하며 끊임없이 흔들리고 방황하는 개인의 삶을 시로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시라는 형식을 통해 불의한 권력에 맞서려고 했습니다. 시 ‘풀’이나 ‘폭포’에는 권력과 폭력에 짓눌린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과 절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4·19혁명은 그의 시 정신에 불을 지핀 계기가 되었습니다. 4·19혁명에 뜨겁게 반응했던 그는 곧이어 찾아온 정치적 침묵과 퇴행의 징후를 날카롭게 감지하고 분노합니다. 그에게 문학은 단지 미학적 활동이 아니라 현실에 맞서는 윤리적 실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억압된 시대에 대한 생생한 고발, 그리고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언어의 절박함은 이후 그의 시 곳곳에 스며들게 됩니다.

하지만 시인은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합니다. 47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어쩌면 그날,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시대의 고통을 감지하고 말해온 감각 하나가 꺼져 버린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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