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영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왼쪽)이 26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을 계기로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렸다. 법관대표회의는 공식 입장을 채택하지 않은 채 2시간여 만에 종료됐다. “의결로 입장을 표명하는 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법관 대표들은 대선 이후 회의를 속행해 보충 토론과 의결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실상 회의를 연기한 셈이다.
대선을 불과 8일 앞두고 법관대표회의가 열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법원이 이 후보 상고심 선고를 전원합의체에서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하면서 정치적으로 논란이 일었고, 이에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개최 및 특검법 상정, 법원 판결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는 법안 등을 잇달아 내놨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법관들이 모여서 의견을 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다. 법관대표회의가 특정 재판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이유로 법원 내부에서 회의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회의 현장에서는 사전에 상정된 ‘재판 독립 침해 우려’와 ‘재판의 공정성 준수’ 등 2건 외에 “대법원의 전례 없는 절차 진행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 초래” “법관에 대한 특검 탄핵 청문 절차 등 진행은 사법권 독립 침해” 등 5건의 안건이 추가됐다. 대법원 판결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정치권의 사법부 독립 침해에 반대한다는 점을 함께 안건으로 올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으려 한 것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회의에서 특정 안건을 채택했다면 법관 대표들의 본래 취지와 무관하게 각 정당에서 이를 선거 캠페인의 소재로 삼으면서 사법부가 정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을 공산이 컸다.
법관 대표들이 진통 끝에 개최한 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않고 대선 뒤 재논의하기로 한 것은 법원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런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참석자마다 각자의 의견이 있었겠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사법의 정치화’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신중하게 판단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만큼 법원 구성원들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킬 방안을 찾기 위해 보다 깊이 있는 고민과 숙의를 이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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