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전주성]새 대통령의 100일, 실현가능한 구조개혁 청사진에 집중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30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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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무능과 비효율에 국민 인내심 바닥나
이념 놀이나 실체없는 실용 통할 시기 아냐
단기 현안과 미래 과제를 정확히 구분하고
협치 방안, 필요한 정책 수단까지 제시해야

전주성 이화여대 명예교수·‘개혁의 정석’ 저자
전주성 이화여대 명예교수·‘개혁의 정석’ 저자
이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는 그만 보고 싶다. 대통령이 수사받고 탄핵당하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나라가 그럭저럭 굴러갔던 것은 부지런한 가계와 기업이 있고, 과거의 정부가 구축해 놓은 재정 기반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적된 구조적 비효율을 제거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는커녕, 당장 접한 민생 현안조차도 해결 못 하는 정권들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인내심은 바닥났고, ‘피크 코리아(Peak Korea)’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국가 미래는 어두워졌다. 저성장 기조 탓에 세수 부족 현상이 고착되면서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문제는 적자 재정이 구조개혁 같은 적극적 목표의 수단이 아니라 현실에 끌려다니며 빚으로 버티는 소극적 대응의 결과라는 점이다.

한 정권의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중 핵심은 성장의 과실로 늘어난 세금이 혁신이나 복지에 재투자되고, 이것이 다시 성장 잠재력을 높여 재정 기반을 튼튼하게 해주는 ‘세수와 성장’의 선순환 여부를 보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 국가 중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자원 동원 능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저성장과 세수 부족으로 정부의 손발이 묶이면 아무리 야심찬 공약을 내세우며 새 정부가 출범해도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지금은 시장 자율과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에서 복지 확대와 전략 산업에 대한 정부 역할이 강조되는 큰 정부 시대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여기에 더해 정치 양극화가 초래하는 극한 대립이 일상이 되고 있다.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지던 달러나 엔화 자산도 흔들릴 정도로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돼 있다. 영국에서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재정 안정성을 무시한 채 이념지향적 감세를 시도하다 조기 퇴출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적인 관세정책이 주춤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정책들이 초래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응징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금은 한가한 이념 놀이나 실체 없는 실용주의가 통할 시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주 출범할 새 정부의 승부수는 무엇이어야 할까.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려면 찔끔거리는 추경을 반복하기보다 잘 설계된 과감한 재정 확대를 하는 편이 낫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 적자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미래의 세수 전망에 달려 있다. 문제는 기존의 누더기 조세 제도로는 탄력적인 세수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구멍이 많아 조세 회피가 쉽고, 세 부담의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정부 신뢰도마저 낮아 조세 저항도 크다. 적당히 세율 인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 대단한 착각이다. 근본적 조세 개혁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은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인적자원 분야 개혁의 시동을 거는 것이다. 출생률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의 대립이 완화되며, 교육 생태계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만으로도 시장은 반응할 수 있다. 일반 정책과 달리 개혁은 초반에 비용이 집중되고 미래에 편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항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아무리 다수당이더라도 협치와 중도층 지지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 다음 선거의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주체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정책 능력의 핵심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취임하는 새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의 새 틀을 효과적으로 짜야 하는 100일은 중요하다. 최악의 선택은 예전처럼 5년 임기 내에 할 일들을 백화점 식으로 나열하고, 늘 하던 관료주의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하며, 야당과의 정치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러면서 단기적 인기를 위한 포퓰리즘 정책까지 남발하면 유권자와 시장의 응징은 바로 시작될 것이다.

반대로 유능한 정부라면 단기 현안과 시간이 필요한 미래 과제를 정확히 구분하고, 이에 필요한 정책 수단을 적시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며, 나아가 정치적 협치의 공간을 마련할 것이다. 특히 교육과 같이 어려운 개혁 과제의 경우 이번 정부에서는 협치를 통해 공동의 청사진을 만들고, 다음 정권은 정치적 부담 없이 집행만 하는 ‘정권을 이어가는 개혁’이 해법일 수 있다.

직원들이 ‘최애’하는 사장은 혼자만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돌쇠가 아니라 문제 설정을 분명히 한 다음 직원들에게 믿고 맡기는 똑똑하고 게으른 타입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목표와 수단, 단기와 장기, 정치와 경제라는 다차원 방정식을 제대로 꿰뚫는 비전에 근거한 시스템을 갖춘 다음 정부 구성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일하게 만드는, 유능하지만 적당히 게으른 집권 세력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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