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치킨집에 앉아 있는데 뒤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중년 남성과 직원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남성은 뭔가를 도와 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하는 눈치였다. 얼핏 분위기가 짐작이 갔다.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는 중년의 모습이 놀랍지 않았다.
비단 식당에서만이 아니다. “누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어.” 얼마 전 모임에 가서 들은 말이다. 지인들의 소셜미디어 프로필 사진이 모두 똑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최근 유행하는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에 관한 얘기였다. 나 역시 엊그제 은행 앱으로 만든 신규 통장의 이체 한도가 100만 원으로 묶여 당혹스러움을 겪었다. 영업점에서 조정 가능하다는 문구를 보고 신청했으나 최종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 비대면인 탓에 설명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겨난 결과였다. 궁금하면 이용하라는 챗봇도 내겐 소용없었다.
요즘은 눈만 뜨고 일어나면 확 달라져 있는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 속도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변화들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멈춰 서 있다간 어느 순간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겨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다음 세 가지부터 해보길 바란다.
첫째, 많이 접해 보자. 음식 주문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는 생활 전반적으로 기계가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무인 접수기를 거쳐야 하고, 마트에서 할인 혜택을 누리려면 모바일 멤버십에 가입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간에 복잡한 인증 절차가 기본처럼 따라붙는다. 애써 외면할 뿐 디지털은 이미 우리의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계를 자주 다뤄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에서 손님 없는 시간대를 틈타 천천히 키오스크를 눌러보자. 조금은 어색하고 주변이 신경 쓰이겠지만 디지털과 가까워지는 제일 쉬운 출발점이다. 디지털 역량은 머릿속 지식이 아니라 손끝으로 익히는 감각에서 길러진다. 직접 부딪쳐 보기만 해도 한 발짝 나아간 셈이다.
둘째, 디지털 수업에 참여하자. 우리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못하는 이유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일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묻자니 민망하고, 친구들도 대충 얼버무리는 정도라 진전이 없다. 스스로 검색해서 배워보려 해도 수월치 않다. 글이나 음성만으로는 무슨 뜻인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다. 처음 듣는 용어들은 하나같이 난해하기만 하다.
다행히 요즘 중장년층을 위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이 많다. 며칠 전 내가 받은 한 단체의 커리큘럼도 열에 아홉이 디지털과 연관된 주제였다. 스마트폰 사용법은 물론이고 영상 편집, 전자책 제작까지 수준도 다양했다. 혼자보다는 함께 해야 덜 지친다. 배움의 기회는 다른 사람이 마련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나아가는 건 우리의 몫이다.
셋째,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자. 지금은 돈이 있어도 굶어 죽는다는 대화가 농담처럼 오가는 시대다. 그만큼 이전에는 부족해도 괜찮았던 디지털 능력이 현재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변했다. 기계에 대한 막막함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나 자신을 위축시키고 어딘가에 선뜻 나서기조차 주저하게 만든다.
가장 큰 걸림돌은 지레 겁먹고 마음의 문을 닫는 자세다.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며 순간을 모면하기에 급급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아주 작은 도전이다. 모바일 지도로 목적지 찾아가기, 중고 마켓 앱에 물건 올려보기 등 평상시 생각만 했던 일들을 시도해 보자. 그렇게 서서히 디지털 루틴을 쌓다 보면 언젠가 기계는 피하고 싶은 대상에서 벗어나 나를 이롭게 하는 존재가 돼있을 것이다.
아직도 디지털 도구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김모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60대 중반의 김 씨는 근래에 무척이나 신난다고 했다. 퇴직하고 개설한 소셜미디어 채널에 재미를 붙여 하루가 짧게 느껴진다고 했다. 우연히 평소 좋아했던 역사와 관련한 영상을 올렸는데 구독자 수가 차츰 늘어 1만 명을 넘었다. 처음에는 자막 작업도 벅찼지만 이제는 배경음악도 넣는다며 뿌듯해했다. “오래간만에 사는 맛이 난다”던 그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
이처럼 디지털 세상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역시 그 안에서 새롭게 연결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중요한 건 잘하려는 의욕보다 일단 해보려는 태도다. 퇴직 후 멋진 인생을 꿈꾸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용기를 내어 보면 어떨까. 김 씨처럼 전혀 상상하지 못한 길이 활짝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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