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주의 기원으로 일컬어지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는 기원전 6세기 말 클레이스테네스(기원전 570∼기원전 508·사진) 개혁을 통해 본격적인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민주정의 아버지’라 불렀고, 헤로도토스는 ‘민주정을 확립한 자’로 기록했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의 핵심은 부족 재편과 도편 추방제였습니다. 당시 아테네는 혈연과 귀족 중심의 네 부족 체계로 움직이고 있었고, 이는 특정 가문이나 귀족 계급에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이 체제를 해체하고 아테네를 포함한 아티카 전역을 해안, 내륙, 도시의 세 지역으로 나눴습니다. 이후 각각을 10개 구역으로 쪼개 이질적인 지역을 섞어 새로운 부족 10개를 구성했습니다. 이로써 특정 계급의 지배를 방지하고, 균형 잡힌 시민 대표 체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새로 구성된 부족은 다시 ‘데모스’라는 더 작은 행정단위로 세분됐고, 시민은 자신이 속한 데모스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 구조는 민회, 협의회, 배심제 같은 민주정의 근간으로 발전하며 시민이라는 정체성과 정치적 권리가 하나로 결합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독재 권력 부활을 막기 위해 도편 추방제를 도입했습니다. 민회에서 다수 시민이 한 인물을 위협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그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6000표 이상이 나오면 10년간 도시에서 추방하는 제도였습니다. 실제로 추방된 자는 65년 동안 13명에 그쳤지만, 시민의 감시와 견제를 상징하는 장치로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정치권력이 공공 감시 아래 있다는 사실이 민주정의 긴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은 정치권력이 특정 계급이 아닌 다수 시민의 참여를 통해 운영돼야 한다는 이상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역사적 분기점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테네 시민은 스스로를 지키고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자각은 490년과 480년 페르시아 전쟁에서 작은 도시 아테네가 거대한 제국에 맞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3일은 21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의지를 통해 살아 움직입니다. 한 사람의 표는 작아 보이지만 그 표는 고대 아테네 이래 이어져 온 ‘공동체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이자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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