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인문학으로 세상 읽기]시와 친해지려면… SNS에 올릴 ‘한 문장’ 찾기부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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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시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며 어조-심상 등 시적 표현 감각 길러야
해석보다 화자 감정 공감하며 감상
작가의 다른 시집 찾아서 읽어보고
작품 간의 연결성 발견하는 재미도

시를 어렵지 않게 접하려면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 낱낱이 해석하기보단, 자주 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일단 쉬운 시부터 차근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다양한 시를 읽으며 작가가 어떤 표현을 통해 감정을 구현해 내는지 관찰하다 보면 심상에 대한 감각을 기를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시를 어렵지 않게 접하려면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 낱낱이 해석하기보단, 자주 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일단 쉬운 시부터 차근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다양한 시를 읽으며 작가가 어떤 표현을 통해 감정을 구현해 내는지 관찰하다 보면 심상에 대한 감각을 기를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시를 읽자고 하면 많은 학생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말 ‘아무리’ 읽었을까,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아무리’는 정도가 매우 심함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의심을 거두고, 쉬운 시부터 차근히 읽어보자고 권합니다. 외국어도 기본적인 단어부터 배우고, 수영도 발차기부터 익히는 것처럼 서정시도 시적 화자와 나의 공감 거리가 짧은 것부터 읽는 게 좋습니다. 읽으면 금세 알게 되는 감정을 어떻게 새롭게 표현했는지 지켜보면서 다양한 작품을 만나다 보면 잘 모르는 이야기에도 다가갈 수 있습니다.

● 내 SNS에 옮겨 적고 싶은 한 문장 찾기

올해 새 시집을 출간한 박준 시인은 “시를 공부한 사람으로서가 아닌, 독자로서 시집을 읽을 때는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옮겨 적고 싶은 한 문장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읽는 것이 좋다”고 전했습니다.

시를 만나려면 첫걸음을 가볍게 떼야 합니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낱낱이 해석하고 싶은 욕망은 우선 누르고 자주 만나야 합니다. 공을 차거나 공에 맞기도 하면서 축구 실력이 느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력이란 시나브로 쌓입니다. 행간을 읽어내는 밝는 눈, 시적 표현과 어조에 대한 이해, 다양한 이미지와 심상에 대한 감각도 시를 자주 접하며 조금씩 길러지게 됩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탄하면서도 공을 들고 나가는 아이처럼 계속 즐기다 보면 시에 대한 이해가 확장됩니다.

시와 조금 친해졌다면 한 작가의 다른 시집을 찾아서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한두 권 읽어 나가면 작가의 세계관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만난 시적 대상을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마치 동무를 재회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박준 시인의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2025년)는 전작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년) 이후 7년 만에 나온 시집입니다. 독자는 이미 전작에서 지훈이와 지호를 알고 있었는데, 이번 시집에서 그 형제와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훌쩍 큰 연년생 아이들이 서로 보듬으며 애틋하게 잘 지내는구나 싶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작품 속 등장인물의 성장기

7년 전 시를 읽어볼까요. 박준 시인의 ‘연년생’ 시입니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동생 지호는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

병원에 엄마가 실려 갈 때마다 울던 아이들이 ‘그날’은 다르게 울었다니,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른 날, 매우 큰 일이 일어난 날인가 봅니다. 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볼 수가 없습니다. 연년생이라 겨우 한 살 차이의 소년들인데, 짐짓 다 큰 것처럼 계속 ‘어머니’라고 부르던 태산 같던 형이 어린아이처럼 울던 날, 어쩔 줄 몰랐던 동생은 ‘형아’만 부릅니다. 독자는 ‘엄마가 위독한가, 돌아가셨나’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짠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새로 만난 박준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에서, 지훈이와 지호를 다시 만났습니다. 함께 읽던 선생님이 “어머, 얘네들 잘 있네”라고 알려줘 급하게 페이지를 넘겨 형제를 다시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좋던지요.

“지호는 어젯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지훈이를 보고도 크게 반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한순간도 곁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능곡빌라 3’)

형제를 이미 만났던 독자들은 ‘수학여행’씩이나 다녀온 지훈이가 대견합니다. 더 이상 ‘형아’라고 부르지 않는 지호도 많이 큰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러나 ‘곁을 떠난 적’ 없는 형제 마음은 ‘곁을 떠나 버린’ 엄마 이미지와 중첩이 되고, 조금은 마음이 아픕니다. 왜 ‘능곡빌라 2’는 없을까요? ‘연년생’부터 이어지는 세 번째 시임을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혼자입니다. 불쑥 커버린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마음에 외로움과 불안함이 돋아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마음에는 곁을 떠난 적이 없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형인 지훈이와 동생 지호도 잘 자라고 있고, 그간 우리도 그럭저럭 버티며 잘 살았다는 위로도 받습니다.

처음 읽었던 시에서 독자는 엄마의 부재가 주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바로 느껴졌다기보다는 시간차 공격처럼 0.5초 늦게 이해되었습니다. 아직은 덜 자라 솜털 보송할 것 같은 아이 종아리가 굵어졌고, 서로 곁을 의지하며 잘 살고 있다니 우리 시린 마음도 이제는 좀 성장하려나요. 시를 읽고 난 뒤에 여러분 마음에 무엇이 남았나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시#독서#박준#성장#시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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