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공군참모총장(앞줄)이 3월 1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3월 6일 발생한 공군 전투기 오폭 사고와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손효주 정치부 기자대선을 앞두고 지난 정부 3년을 돌아보면 군 관련 사건이 유독 많았다는 느낌이다. 지난달 29일에도 해상초계기 추락 사건으로 해군 장병 4명이 산화했다.
정권별 군 관련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정부의 군 관련 위기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에선 자해적 결정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오판이 이어졌다. 후속 조치 과정에서 논란이 커진 사례가 많아 실제 일어난 사건보다 더 많은 일이 일어난 듯한 착시 효과를 주는 셈이다.
공공분쟁 조정 전문가인 로런스 서스킨드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저서 ‘달려드는 고객과 시민, 끌어안는 기업과 정부’에서 기업인과 정부 관리가 분노한 공중(公衆)을 상대하는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로 “책임질 부분을 받아들이고 실수를 인정하고 권력을 분배한다”고 명시했다. 책은 모르쇠, 딴소리 등 상황을 모면하려는 술책이 공중의 분노를 얼마나 확산시키는지도 짚는다. 지난 정부는 이 뻔한 원칙을 무시했다. 공중의 분노를 조기 진화하지 못한 채 오히려 확산시키고 장기화했다.
채모 상병 사건을 보자.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 분노를 조기에 사그라들게 할 수 있었던 최소 두 번의 기회를 걷어찼다.
채 상병 순직 10여 일 뒤인 2023년 8월 2일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이 그해 7월 말 해병대사령관을 만나 “모든 책임을 지겠다. 부하들을 선처해 달라”면서 사의를 표명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이 기사에는 “지휘관의 책임감에 감동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문제는 보도 직후였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 A는 보도 내용을 부인하며 “군인이 어떻게 사의를 표명할 수 있느냐. 해병대가 언론 플레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난해 7월 임 사단장은 2023년 7월 28일 사의를 표명했었고,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이를 결재했지만 같은 해 7월 31일 결재가 번복됐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렇다면 A는 왜 화를 냈을까. 2023년 7월 31일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 할 수 있겠느냐”는 ‘윤석열 대통령 격노’가 있었던 날로 알려져 있다. 군에서는 이 격노를 계기로 ‘임 사단장 구하기’기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추측건대 이 보도 이후 확산된 임 사단장 사퇴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달가웠을 리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때 임 사단장의 자진 사퇴 의사가 받아들여졌다면 어땠을까. 한 병사의 죽음에 ‘투스타’ 사단장이 스스로 옷을 벗었다면 청춘을 바친 의무 복무자의 희생에 분명한 책임을 묻고 전례 없는 수준으로 예우하는 정부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또 다른 기회도 있었다. 2023년 8월엔 채 상병 죽음에 있어 임 사단장 책임이 중대하다고 했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조사 결과와 이를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의 중간 결과가 일치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이에 국방부는 “조사본부의 재검토와 관련한 일부 매체 보도는 사실이 아님.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공지했다. 오보라고 규정한 대응이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난해 6월 당시 조사본부가 만든 중간보고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엔 조사본부 재검토 결과로도 임 사단장 혐의가 중대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10개월 전 국방부가 정확한 보도를 오보로 만들어 언론 보도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 한 것이다. 당시 조사본부 중간보고 문건에 담긴 결과 그대로 임 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명확하게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고, 국방부와 대통령실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임 사단장 구하기’에서 손을 뗐더라면 정부는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위기 대응의 모범 답안이라 할 만한 사례도 있다. 올해 3월 공군 전투기 오폭 사건이 터지자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국방부로 와 사과했다. 4성 장군이 직접 기자들에게 사건 브리핑을 하고 곧장 고개를 숙이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변명도 없었다. 기자들 질의에는 보안 문제가 없는 한 모두 답했다. 이런 원칙적인 대응으로 이 위기는 단기간에 마무리됐다.
3일 탄생할 새 정부에서도 군 관련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그때 채 상병 사건 대응의 길을 택할까, 오폭 사건 대응의 길을 택할까. 새 정부는 분노한 공중을 상대하는 뻔하고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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