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성남의 ‘이변’이 만들어갈 억강부약의 대동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4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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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많은 이재명 대통령 별명 ‘이변’
강자 억눌러 약자 돕는 ‘이재명 사상’
압도적 다수 민주당보다 강한 권력 있나
대통령 권력 분산시키면 대동세상 올 듯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흰색과 짙은 붉은색, 파란색이 조화를 이룬 넥타이가 시선을 끌고 있다. 2025.06.04.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흰색과 짙은 붉은색, 파란색이 조화를 이룬 넥타이가 시선을 끌고 있다. 2025.06.04. 국회사진기자단
성남 시민운동 시절 이재명 대통령의 별명은 ‘이변’이었다. 이 변호사의 줄임말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이변(異變)을 많이 일으켰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2017년 자전적 에세이 ‘이재명은 합니다’에 쓴 내용이다. 성남 시장통 단칸방에 살던 소년공이 변호사가 되고, 시민운동을 하다 벽에 부딪히자 성남시장에 당선돼 뜻을 이루고, 마침내 대통령이 된 것보다 더 큰 이변이 있을까 싶다.

이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 49.42% 역시 이변이다. 1728만7513표로 대선 최다 득표수지만 절반을 넘기진 못했다는 점에서다. 이번 대선의 큰 의미는 12·3 계엄 심판이었다. 두 달 전 갤럽 여론조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이 57%,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 뒤엔 ‘잘된 판결’이 69%였다.

이에 비하면 이 대통령의 49.42%는 계엄 심판 정서를 온전히 담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압도적 의회 권력을 확보한 채 국민 주권의 명분 아래 사법부까지 위협하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 심리가 과반수 미만 득표율로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이 대통령은 4일 취임사에서 공존과 통합의 가치를 말했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DJ)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며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천명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김영삼 정부 공보처 장관을 지낸 오인환은 2023년 저서 ‘박정희의 시간들’에서 “실용주의자인 박정희는 경제 리더십으로 5000년 가난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 쿠데타 일인자들과 달랐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박정희 유신독재의 잔재도 이 대통령이 청산해 주었으면 한다. 윤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박정희 유신의 망령인 것처럼 이 대통령의 아픔 역시 박정희 독재의 마지막 유산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가 1976년 정착한 경기 성남 상대원동은 개발독재 시대 서울 청계천 같은 판자촌에서 집단 이주해 온 철거민들로 북적대던 곳이다. 1960년대 말 14만 명이 옮겨간 경기 광주 대단지엔 상하수도 시설도, 일자리도 없었다. “굶주림에 XX를 삶아 먹었다”는 흉흉한 풍문이 나도는 가운데 1971년 일부 주민들이 일자리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광주 대단지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주민교회가 생기고 도시빈민운동과 산업선교가 활발해지고 경기 동부 등 운동권이 집결하면서 성남은 시민운동의 메카가 됐다. 이변의 대통령 등극은 사실상 박정희가 낳은 성남시민운동의 ‘청와대 입성’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이변인 셈이다.

성남공단 소년공 시절,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와 힘든 노동과 구타에 고통받았던 것도 군사문화 탓이 컸을 것이다. 장애까지 입은 때문인지 그는 성남시장 때도, 경기도지사 때도, 심지어 4일 새벽 대통령 당선인 인사 때도 “이재명이 꿈꿨던 강자의 폭력을 제지하고, 약자를 보듬어서 모두가 함께 사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대동(大同)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좋은 말씀이지만 억강부약은 삼국지 위지(魏志)에 나오는 구절이고, 대동 세상은 공자가 꿈꿨던 유토피아다. 공장 간부들 때려주고 싶다는 소년공 때 심정처럼, 부자 재산 빼앗는 임꺽정 얘기처럼 요즘 시대에 맞는다고 보기 어렵다. 굳이 이 대통령이 강자를 억누르겠다면 압도적 다수 권력인 더불어민주당부터 제어해 주기 바란다. 양보와 타협의 정치가 살아나면서 민주당이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린다는 국민 불안도 가라앉을 수 있을 것이다.

강한 것으로 치면 이 나라에서 대통령 권력보다 강한 건 없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위주의적 권력을 분산시킨다면, 지금의 한국이 원하는 억강부약의 대동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박정희가 남긴 정경유착 부정부패 지역감정 강성노조와 함께 내로남불 같은 엘리트의 천민성과 타락성도 이 대통령이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안타깝지만 대통령 박정희부터 사생활에서 모범을 보이지 못해 측근의 환멸을 샀다고 오인환은 지적했다. 대통령은 공사 구분뿐 아니라 사생활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DJ 정책도 쓰겠다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 협력뿐 아니라 포용력과 폭넓은 인사 기용도 배웠으면 한다. DJ 집권 초 민주화운동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한 참석자가 “청와대는 감옥 같은 곳이지요”라고 했다. 자유롭지 못하고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는 의미였을 터다. 유머로 유명했던 한승헌 감사원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감옥은 들어갈 때 기분 나쁘고 나올 때 기분 좋은 곳인데, 청와대는 들어갈 때 기분 좋고 나올 때 기분이 안 좋으니 정반대 아닙니까?” 대통령 내외도 폭소를 터뜨렸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기분 좋기를 바란다. 실패한 대통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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