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자산 잃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할 세 가지[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2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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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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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퇴직자들과 대화할 때 단골 주제가 있다. 바로 돈이다. 어떤 주식에서 이익을 봤는지, 어떤 상품이 배당이 잘 나오는지 등 각자의 노하우를 주고받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뉴스, 책, 강연을 봐도 주제는 온통 돈을 모으는 얘기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구성된 이른바 3층 연금체계를 통해 노후를 대비하라는 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예금 금리가 1%만 높아도 오픈런이 일어나는 게 요즘이다.

회사 밖에서 취미가 비슷해 서로 인사를 나눴던 이모 씨를 얼마 전 만났다. 여럿이 모여 차를 마시는 자리였는데 유독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평소 치매를 앓고 계신 노모를 모시느라 근심이 많았었지만, 그날은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웠다. 곧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순식간이더라고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듣고 보니 스미싱 피해를 본 이야기였다. 문자에 포함된 링크를 누른 뒤 수천만 원이 휘리릭 빠져나갔다고 했다. 그는 “도무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박식하기로 소문난 그였기에 다들 당황했다.

평상시 그가 보여준 삶의 태도는 안타까움을 더했다. 내가 알기로 그는 수년 전 직장을 떠난 뒤 거의 쉬지 않고 일만 해왔다. 주차장에서 발레파킹을 하거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의 책임을 묵묵히 감내했다. 과거 대기업에 몸담았던 경력을 내려놓은 지도 오래였다. 한 푼이 아쉬운 그의 형편이 더욱 팍팍해질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돈 걱정 없는 퇴직자가 어디 있으랴. 나 역시 이 씨처럼 퇴직 후 편히 쉴 수 없었다. 노후를 떠올리면 막막하고 답답했다. 결국 그 불안을 이기지 못해 창업을 결심했다. 재취업에 번번이 실패해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사업은 계획을 세울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던가. 금세 성공할 듯한 기대감에 마냥 들떴다. 여기저기 들어가는 경비가 적지 않았지만 투자라고 여기며 아낌없이 돈을 썼다. 필기구조차 남을 의식하면서 고급품을 골랐을 정도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불과 몇 달 만에 그야말로 폭삭 망했다. 단순 계산해도 창업에 들어간 자금은 나의 4년 치 생활비를 훌쩍 넘겼다. 사업이라는 게 실지 운영하면서 늘어나는 비용이 상당히 많았다. 예상치 못한 항목들이 자꾸 생기는 바람에 지출은 예산을 항상 초과했다. 반면에 들어오는 수입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직접 해보니 창업은 퇴직자가 로망이나 차선책으로 덤벼들기엔 큰코다치기 딱 알맞은 상대였다.

벌어도 시원찮은데 큰돈을 잃게 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손실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가게에 갔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주식 얘기를 꺼냈다. 주식 투자는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본인은 3년째 공부 중이라고 했다. 워낙 확신에 차 있던 터라 나도 모르게 혹하고 빨려 들어갔다. 사장님이 종이에 적어 준 회사 이름을 보물처럼 받아 들었다.

며칠 뒤 크게 망설이지 않고 추천받은 종목을 샀다. 모르는 기업이었지만 일단은 적은 금액으로 테스트만 해 볼 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했다.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데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다 넣으세요.” 순간 솔깃해져 소위 영혼까지 끌어다 여윳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내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누군가 주식은 묻어두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 시간을 버텨낼 힘이 없었다.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퇴직 후 자금 관리에서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 다름 아닌 △보이스피싱 등 각종 금융 사기 △충분한 정보 없이 뛰어드는 ‘묻지 마’ 투자 △준비되지 않은 무리한 창업이다. 이것은 모두 퇴직자의 자산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지뢰와도 같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수십 년간 모은 돈을 앗아가 버리기도 하고, 남은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회사를 나오면 직장인 시절과는 확실히 달라진다. 고정소득 없이 살아가야 하기에 작은 손해도 자칫 생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퇴직자의 재정 전략은 ‘수익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에 못지않게 ‘손실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유혹,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판단, 감정에 휩쓸린 소비는 그 대가가 매우 클 수 있다. 인생 2막에서는 돈을 지키는 일이 곧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버려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는 착각이다. 재정적으로 한순간에 주저앉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내 재산을 보호하는 첫걸음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스스로를 과신하는 퇴직자에게 경제적 안전지대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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