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보 교육팀 기자가 ‘공교육 정상화’ 관련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수학 단원평가를 진행한 뒤 학부모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해당 교사는 “곱셈, 나눗셈 같은 수학은 단원 평가가 꼭 필요한데 학부모로부터 ‘우리 아이 자존감 떨어지게 왜 시험을 보느냐’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대전의 한 초등 교사는 “진단평가에서 기초학력이 낮게 나온 학부모에게 방과후 보충학습을 제시했다가 ‘아이를 낙인찍다니 선생 자질이 없다’는 비난을 들었다”며 황당해했다.
학부모의 민원으로 공교육 현장에서 단원평가는 물론이고 교내 경시대회 개최마저 어려움을 겪자 반대로 사교육 시장에서 국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의 경시대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중학교 1학년까지 학교 공교육에선 시험으로 학생 수준을 파악할 수 없는 ‘깜깜이’ 상태이기 때문이다. 교육열 높은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 전국 상위 몇 퍼센트에 드는지 알기 위해 사설 경시대회를 찾는다. 공교육은 학부모 악성 민원에 눈치를 보느라 제 역할을 못하고, 사교육 시장은 허점을 활용해 시장을 키워 나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학생 수는 매년 감소세지만 지난해 사교육 시장 규모는 30조 원에 육박했다.
최근 본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초중고교 교원 7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98.6%는 “수업, 평가, 체육활동, 생활지도 등을 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교원은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 역할을 49.8%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특히 교원들은 교육 활동 중 가장 어려운 영역으로 ‘생활지도’(93.8%·복수응답)를 꼽았다. 지난달 학교에서 숨진 제주 지역 교사도 결석이 잦은 학생을 지도하다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 인사들은 공교육이 반쪽짜리로 전락한 이유에 대해 ‘서이초 교사 사망’ 등 교권 침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근본적 대책 대신 땜질식 미봉책 수준의 방안을 내놓은 점을 지적한다. 반면 해외는 어떨까. 미국은 2001년 ‘교사보호법’을, 영국은 2006년 ‘교육 및 검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심각한 교권 침해가 발생하면 가해 학생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교사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은 최소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교육 공약으로 국가 책임 공교육 강화, 사교육비 경감 등을 밝혔다. 새 정부가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을 추진하려면 약속한 대로 공교육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공교육 사다리 상단에 대학입시가 존재하는 건 현실이지만, 학교는 단순한 ‘입시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교육 현장은 학생이 인성과 시민으로서 소양을 배우고 교우관계를 맺으며 사회화 능력을 쌓을 수 있는 토대 그 자체다.
공교육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교권 침해는 민주화 이후 학교의 권위주의 청산 요구 속 교육 정책이 학생과 학부모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치우치면서 초래한 측면이 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정부가 교사와 학부모 간 건전한 소통과 균형적인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비롯해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한 실효성 있는 법적 토대부터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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