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 일으키는 착각[내가 만난 명문장/김리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2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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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그때까지 스스로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제가 이 주제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나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솔뫼 ‘극동의 여자 친구들’ 중


김리윤 시인
김리윤 시인
나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는 감각되지 않고, 흔적을 더듬어 추측하는 방식으로만 설명된다. 기우뚱하게 닳은 신발 밑창, 원인이 기억나지 않는 멍, 황당하게 넘어진 장면을 기억하는 친구들, 걸음 수가 동행의 1.5배는 되는 만보기 기록 같은 것.

몸을 가진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인다. 한 개체의 움직임은 언제나 변화를 담보하고 시간을 끌어당기며 나의 바깥과 뒤섞이는 사건을 발생시킨다. 우리의 몸과 움직임을 의식하는 동안 몸 사이의 구별도, 간격도 잊게 된다. 뒤섞인 숨으로 자욱한 허공에서 너의 숨과 나의 숨을 분간할 수 없듯이.

지난해 머문 태국 북부에서 다른 작가들과 짝을 지어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워크숍에 참여했다. 나의 파트너는 영국에서 온 조너선이었고 그는 나보다 서른 살쯤 많았으며 30cm쯤 더 컸다. 우리는 설명에 따라 서로의 눈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어른거리는 상대의 움직임을 따랐다. 움직임 자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던 파란 눈동자를 무언가로 착각했던 것 같은데 그것은 나였을까, 모르는 사람이나 시간이었을까.

개와 걷는 동안 종종 바람과 등을 맞대고 있고 그 바람은 나뭇잎과, 나뭇잎은 새와, 새는 구름과… 그렇게 함께 움직이며 서로의 어깨뼈를 혼동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개는 자주 곤경에 처한다. 나무에 줄이 걸려서, 볼일이 급해서, 땅이 젖어서… 그 앞에서 나는 대체로 발이 가볍고, 뭘 해야 할지 알고, 명료하고 단순하게 몸을 다루는 사람처럼,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나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잠시 해결한 듯이.

#움직임#감각#몸#워크숍#파트너#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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