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최근 한국은 그야말로 인공지능(AI) 열풍에 휩싸여 있다.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100조 원 투자를 통한 3대 AI 강국’ 공약부터 대통령실에 AI미래기획수석 신설까지, 이에 더해 거의 매일 쏟아지는 AI 관련 행사들은 우리 사회가 AI 기술에 거는 기대와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언론에는 연일 AI 활용법이나 산업 현장에 가져올 혁신에 대한 소식이 올라온다. 관련 교육 프로그램도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 모두는 AI가 만들어낼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그 배경에 깔고 있다.
AI의 중요성에 대한 국가적 자각과 관심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 거대한 AI 열풍 속에서 인간의 삶과 직결된 근본적인 질문은 묻혀 버리고 있는 듯해 우려도 든다. 인공신경망 기술 발전의 공로로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AI 기술 발전 속도에 대한 경고나 ‘사피엔스’ 저자인 유발 하라리 전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가 신간 ‘넥서스’에서 제기한 AI의 파괴적인 역할에 대한 우려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AI를 어떻게 도입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매몰돼 있을 뿐 AI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 특히 ‘인간의 생존’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과 경각심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AI 기술의 조용한 위협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일자리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챗GPT의 등장 이후,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신하는 AI의 능력이 가시화되면서 일자리 대체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들리고 있다. 법률, 회계, 금융, 소프트웨어 개발 등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던 화이트칼라 직종의 많은 업무가 AI로 대체되고 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3억 개의 전일제 일자리가 AI로 인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 결과 노동의 가치와 희소성이 뒤바뀌는 사회적 파장이 예고된다. AI가 전문가를 대체하면서 인간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예컨대 AI를 훈련시키기 위해 인간이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 때처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이번에는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다르다. AI는 창작, 계획, 융합과 같은 인간의 고유영역이라 여겨졌던 분야까지 침범하고 있다. 최고 수준의 전문가와 최저 숙련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지만, 전문직 지식노동자 대부분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AI가 부의 창출을 주도하게 되면 AI를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의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둘째, 교육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재정의가 필요해지고 있다. AI로 인해 인간의 직무가 재편되면서 전문가의 역할이 축소되는 시대에 기존 대학 시스템이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두 개 전공의 지식을 습득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하는 기존 고등교육만으로 AI를 능가해 생존할 수 있을까?
‘교실-교사-학생’으로 이뤄진 초중고 교육의 기본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AI가 자리하게 되면서 교사의 역할은 지식 전달에서 교육 기획과 조정(코칭)으로 변화할 것이다. 교실의 개념도 확장될 것이다. AI와의 차별화를 위해 교사와 학생 간의 정서적 활동이 중요해지고, 어디든 그런 체험이 이뤄지는 공간이 ‘교실’이 될 수 있다.
AI를 교육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역량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학생들이 AI의 답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스스로 사고하고 탐구하는 능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과제나 시험에서의 문제 해결을 AI에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학생들이 성인이 됐을 때 독립적 사고를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셋째, AI를 신격화하는 경향은 인류의 실존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AI의 놀라운 능력은 과도한 신뢰로 이어지고, AI에 과의존하게 되면 비판적 사고력과 판단력을 잃을 수 있다. AI가 생성하는 허위 정보나 편향된 사고에 쉽게 설득될 위험도 있다. 더욱이 AI가 10명, 100명의 전문가 역할을 해낸다면 인간관계의 필요성 자체를 덜 느끼게 될 것이다.
이미 사람들은 AI와 대화하며 마치 인간과 소통하듯 감정적 애착을 형성하고 있다. 외로움을 달래는 상담사로, 연인이나 친구로 의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인간관계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면 이는 소통의 부재로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AI가 나쁜 의도를 품어서가 아니라 인류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인간과 AI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인간-AI 공존 생태계’를 지향해야 한다. 기술의 진보를 인류 번영의 기회로 삼되, 발생할 수 있는 인지·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측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AI도 살아남는다. 안전하고 윤리적이며, 우리 문화와 가치를 반영하는 신뢰할 수 있는 AI로 발전시켜야 진정한 AI 강국의 길로 가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