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분위기’는 우연 아니다… 재료-사물-빛-마음으로 빚어낸 연출[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5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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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주관적? 실체의 마법”… 춤토르, 분위기 빚는 9요소 꼽아
사물 배치, 공간 간 관계도 작용… 이를 체험하게 한 ‘유동룡미술관’
재료-빛-풍경-동선 어우러지고, 정성 더해져 비로소 분위기 완성

제주 유동룡미술관의 모습. 제주도의 전통 지붕을 모티브로 디자인했고, 송판 무늬 노출콘크리트로 외벽을 마감했다. 김대균 대표 제공
제주 유동룡미술관의 모습. 제주도의 전통 지붕을 모티브로 디자인했고, 송판 무늬 노출콘크리트로 외벽을 마감했다. 김대균 대표 제공
《‘좋은 분위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소셜미디어는 나를 표현하거나 나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이나 영상이 잘 나오는 분위기 좋은 식당이나 장소는 나의 취향을 대변한다. 이런 곳들은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에 의해 취향이 유사한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파된다. 그렇다면 분위기 좋은 가게, 분위기 좋은 동네, 분위기 좋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식당에 들어가면 프런트에서부터 주방, 테이블, 조명, 음식 냄새, 음악, 장식품까지 사람마다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로 식당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요즘 새로운 가게들이 많이 들어선 서울 중구 을지로를 예로 들어보자. 을지로의 총체적인 분위기는 그곳에 오는 사람들, 시간이 중첩된 도시 풍경, 건물의 형태와 골목의 크기, 동네의 소리 등 수많은 요소들이 합쳐져 형성되지만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단박에 을지로의 분위기를 인지한다. 가게뿐만 아니라 도시를 여행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첫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지각된다.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얽혀서 만들어내는 화학반응처럼 분위기는 우연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공통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 2009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는 그의 저서 ‘분위기(Atmospheres)’를 통해 질이 높은 건축은 개인적으로는 감동이 있는 건물이고, 이런 감동은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분위기는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지만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는 사물, 공기, 소리, 형태, 질감 등 모두 실재하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실체의 마법’이라고 정의하면서 분위기를 만드는 아홉 가지 실체를 설명했다.

그는 가장 먼저 인간의 몸처럼 벽과 기둥, 내·외부 재료 등이 혼합돼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건축 자체가 첫 번째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라 말한다. 두 번째는 공간을 만들 때 쓰이는 재료가 가진 질감과 무게감, 빛의 반응 등과 같은 물성이다. 이 물성이 주변 재료들과 서로 반응하며 분위기를 만들게 된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공간의 소리와 온도다. 예컨대 목재로 만든 공간과 콘크리트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는 서로 다르고, 공간의 온도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다섯 번째는 공간에 있는 사물들이다. 아끼는 물건을 집 안의 좋은 곳에 두면, 그 공간은 한층 더 아름다운 분위기를 갖게 된다. 춤토르는 “물건들은 세심한 관심과 사랑 속에 조화를 이루며 거기에는 끈끈한 유대 관계가 있다”며 공간과 사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분위기에 주목했다. 여섯 번째로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자유로움의 조화다. 적절한 안정감을 주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을 연출하는 것이 분위기의 실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분위기가 좋은 가게에서는 적절한 안정감과 경직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일부 관공서들은 방문객의 편의를 명목으로 동선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공간 사용을 제한해 공간 활용이 경직돼 있다. 이는 시민을 위한 개방적이고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하지 못한다.

일곱 번째로 춤토르는 실내와 실외, 개인 공간과 공공 공간 등 두 공간의 관계가 분위기를 만든다고 말한다. 집의 앞마당이나 동네의 공원은 집과 동네의 분위기를 변화시키고, 카페나 식당도 테라스와 같은 야외 공간이 있으면 좀 더 색다른 공간 연출을 할 수 있다. 여덟 번째는 개인이 느끼는 공간의 크기나 무게감이다. 예를 들면 커다란 성당 문을 열 때 느껴지는 분위기와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나 운동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분명 다르다. 마지막으로 빛이다. 같은 장소라 해도 맑은 날, 해 질 녘, 그리고 어두운 밤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얼마 전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으로 유명한 재일교포 건축가 고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을 위한 제주 유동룡미술관을 답사했다. 이 미술관은 그가 작고한 후 그의 딸 유이화 건축가가 설계했다.

노출콘크리트와 검은색 화강석, 목재 등이 만들어 내는 차분함과 창을 통해 보이는 제주도 풍경이 어우러져 이 공간의 절묘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김대균 대표 제공
노출콘크리트와 검은색 화강석, 목재 등이 만들어 내는 차분함과 창을 통해 보이는 제주도 풍경이 어우러져 이 공간의 절묘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김대균 대표 제공
미술관은 제주도의 전통적인 둥근 지붕에서 형태의 모티브로 얻었고, 외벽은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하고 내부는 노출콘크리트와 검은색 화강석, 목재를 주요 재료로 사용했다. 건물 뒤편으로 펼쳐진 제주도의 풍경과 내부의 은은하게 어두운 공간이 절묘하게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미술관의 빛, 온도, 소리,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의 관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 등을 통해 춤토르가 말한 ‘분위기의 실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전시를 관람한 뒤 들른 미술관 카페에서 내어준 정갈한 차와 디저트에도 이곳 사람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어 미술관의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미술관 내 카페에서 느끼는 이곳 사람들의 정성도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한 요소다. 김대균 대표 제공
미술관 내 카페에서 느끼는 이곳 사람들의 정성도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한 요소다. 김대균 대표 제공
‘감동’은 느끼다는 의미의 ‘감(感)’과 움직임을 뜻하는 ‘동(動)’을 쓴다. 즉 감동은 크게 느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감동은 분위기뿐만 아니라 섬세한 정성과 배려에서도 만들어진다. 아무리 분위기 좋은 가게나 도시라도, 그곳에 사람들의 정성과 배려가 깃들지 않는다면 그 분위기는 금세 사라진다. 결국 분위기는 여러 실재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지고, 거기에 사람의 마음이 더해져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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