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는 법을 알면 세상과 한몸이 된다[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6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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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평온한 날씨가 이어졌다. 나는 주말마다 공원으로 가 시간을 보냈다. 숲길을 산책하다가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빛 나무 빛 그림자 사이에 가만한 나 하나. 이따금 스치는 여린 바람에도 이파리들은 팔랑거리며 빛그물을 끌어 덮어줬다. 거기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절을 느꼈다. 봄이 가고 있구나. 여름이 오고 있구나. 잠잠히 흘려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그날도 공원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숲을 누비던 아이들에게 이제 집에 가자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둘째 아이가 풀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소끔 순해진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름 모를 꽃내음과 새소리를 머금고 너그러운 저녁 빛으로 물드는 숲. 그 한가운데 누운 아이가 물끄러미 저무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 세상에 너만 홀로 있는 순간이구나.

특별할 것 없는데도 너무 아름다워서 멈춰 서는 순간이 있다. 그때 그 순간이 그랬다. 눈앞에 펼쳐진 영화 같은 장면을 보며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떠올랐다. 핑크 마티니의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흐른다. ‘인생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니까/우리는 조금 느리게 걸어가 보자/초원 위에 머리를 대고/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자(Life is moving oh so fast/I think we should take it slow/Rest our heads upon the grass/And listen to it grow).’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구에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이 흐를 때, 눈부시게 쏟아지는 초원의 빛을 받아본 사람처럼 뭉클하게 행복해질 텐데. 그날, 저녁이 내려앉을 때까지 아이를 기다려주었다. 나도 너처럼 홀로 있는 법을 배우며 자랐단다.

잠깐의 평화였다. 풀밭에 누워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기까지 어떤 하루하루를 살아냈는지 하고픈 말들이야 차고도 넘쳤다. 인생이 너무 바쁘고 빠를 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럴 때 나는 일부러 혼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만이라도 세상을 봤다. 소리를 들었다. 날씨를 만졌다. 하늘과 나무와 꽃과 간판과 사람들과 고양이 같은 것들이 보이고 들리고 만져질 때야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했으니까.

해럴드 슈와이저는 책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과 한몸이다. 우리는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시간을 중요한 것으로 만들면서 스스로 중요한 존재가 된다. 기다리는 동안, 내면에서 울리는 지속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우리와 우리의 존재가 한 음조로 공명하기 시작한다.”

홀로 있는 법을 배운 사람은 세상과 한몸이 된다. 세상은 크고 나는 작다. 초원의 풀만큼이나 여리고 작다. 그래도 자라고 있다. 여전히 살아 있다.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속에 흔들리며 자라는 우리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내 앞을 바삐 지나치는 당신을 만난다면 조용히 속삭여주고 싶다. 잠시만.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을래?

#평온한 날씨#숲길 산책#하늘 바라보기#여름의 시작#자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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