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최고의 커피 경험’… 기원 잊은 한국의 블루보틀[이용재의 식사의 窓]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6일 23시 09분


코멘트
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2019년 블루보틀 커피의 상륙 소식에 대체로 무심했다. 미국에서 살았던 시절에도 썩 매력적이지 않았다. 블루보틀이 시작된 샌프란시스코는 뉴욕과 더불어 미국 최고 미식 도시지만 커피는 윗동네인 포틀랜드나 시애틀이 더 나았다. 물론 블루보틀이 샌프란시스코의 최선도 아니었다. 다국적 식품 대기업 네슬레가 2017년 지분 68%를 인수한 뒤 블루보틀이 서울에 진출했는데 성수 1호점의 규모가 걸렸다.

소규모 원두 로스팅과 추출에 정성을 들이는 푸어오버(Pour-over·핸드드립), 동네 카페의 친근함을 내세워 성공한 블루보틀이 저렇게 큰 점포를 낸다고? 원두를 볶는 로스터리 겸 카페라 규모가 컸지만 내가 아는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개업의 광기가 잦아들고 마셔 보았지만 예상대로 커피맛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았다. 그나마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직원들이 좋아 몇몇 지점을 가곤 했다.

이래저래 블루보틀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품어왔는데 실제로 표류 중이다. 2024년 영업이익이 2억4807만 원으로 전년 대비 87% 감소했다.

국내 커피 소비는 대략 세 부류로 나뉘는데 점포의 규모나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다. 첫 번째는 카페인 공급이다. 각성이 주목적이고 매장은 테이크아웃 위주의 소규모 프랜차이즈다. 다음은 초단기 공간 대여로,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의 공간이다. 역시 프랜차이즈 위주에 적당한 공간과 노트북 전원, 인터넷을 갖춘다.

세 번째 부류가 맛과 분위기를 파는 카페다. 맛으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개인 점포가 많고 직접 콩을 볶는 로스터리도 흔히 겸한다. 두 번째 부류만큼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하지는 않기에 카공족이 오래 버틸 수 없는 분위기다. 커피 가격은 첫 번째라면 2000원, 두세 번째 부류는 5000원 선이다.

과연 블루보틀은 어떤 부류를 표방하며 들어왔을까? 첫 번째는 당연히 아닐 테고 ‘아웃렛도 인터넷도 없으니 커피에 집중해 달라’는 창업주의 메시지가 뉴스거리였으니 두 번째도 아니다. 좋으나 싫으나 세 번째인데 그러기엔 공간도 커피도 함량 미달이다. 공간은 지점 무관 흡음이 전혀 안 돼 소리가 울리는데 음악까지 경쟁하듯 크게 틀어, 대화는 고사하고 커피맛도 느끼기 어려웠다. 소음이 일관적으로 오토바이 굉음 수준인 80dB(데시벨) 후반이었다.

의자도 탁자도 ‘빨리 나가라’는 의도가 드러나는 불편한 것들로만 골라서 가져다 놓았다. 매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최선을 다해 불편하다. 예를 들어 연남점의 벽에 붙여 놓은 판자는 엉덩이가 배겨 5분도 앉아 있기 버거웠다. 공통적으로 장애인, 특히 휠체어 접근성이 거의 의도적으로 배제된 듯 보이는 점도 못마땅하다 못해 불쾌하다. 성수점만 보더라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티가 확연하고 다른 매장들도 대동소이하다.

물론 커피도 맛있지 않다. 비교를 위해 여러 매장에서 여름 한정 ‘썸머블렌드’(7700원)를 마셔 보았다. 포도 껍질의 뉘앙스가 고작 200mL밖에 안 되는 양에 갇혀 완전히 뭉쳐 있었다. 비싼데 애초에 제맛이 날 수 없을 정도로 양이 적다. 모든 걸 감안하면 한국의 블루보틀은 브랜드의 기원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한국 시장을 우습게 봤다기보다 네슬레가 지분 인수 후 과욕을 부려 확장한 결과, 자승자박이다.

#블루보틀#커피#샌프란시스코#프랜차이즈#카페#로스터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