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2년형을 받으면서, 직전 정권에서 임용된 공공기관 임원들의 임기를 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수와 진보가 각각 적과 동지를 갈라 주요 이슈마다 격돌하는 작금의 정치 풍토에서, 새 정부는 이전 정부의 철학에 보조를 맞춰 온 인사들을 통해 국정운영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됐다.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 불일치가 문제라는 인식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공공기관운영법에서 기관장의 임기 규정을 아예 없애는 안이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장하기 위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안은 현재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공공기관운영법의 전신인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에 임원 임기에 대한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해봄 직하다. 다만 선출직의 자의에 따라 공공기관장의 재임 기간이 달라지는 경우 국정의 성과가 떨어진다는 경험적 연구가 있다. 또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한대로 보장할 수는 없어 정교한 제도 설계가 전제돼야 한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장의 임기 보장을 전제로 개선안이 제안되고 있는데, 그 첫째는 대통령 임기 5년에 맞추어 기관장의 임기를 2+2+1년으로 하거나 2.5년으로 하는 안이다. 그런데 2+2+1년 안은 공공기관 내부의 잦은 인사와 경영 방향 변동으로 비효율을 초래할 우려가 크고, 2.5년 안은 예산, 결산, 인사, 경영평가 등이 1년 주기로 진행되는 현실과 맞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두 번째 대안은 현행 3+1년 체제를 유지하되, 정권 교체로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면 기존 기관장의 임기를 만료된 것으로 간주하는 안이다. 기관장이 성과를 내는 데 최소 3년은 소요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책임성을 실현할 수 있는 기제이다. 그런데 이 안은 전 정권 기관장을 물러나게는 하지만, 그 자리를 충원하는 문제는 논의하지 않는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즉시 같이 일할 사람을 모두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임원 후보자 모집 공고를 포함한 공공기관장 인사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에 세 번째 대안이 정권 교체에 따른 재신임안이다. 이 안은 ‘기관장의 임기는 3년으로 하고, 이사와 감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는 공공기관운영법 제28조 1항에 ‘다만, 정권 교체 시에는 재신임을 받도록 한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 안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전혀 맞지 않는 인사, 특히 집권 후반부에 ‘자리 나눠 먹기’로 임명된 역량이 미흡한 인사를 적법하게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한다. 동시에 어느 진영에서 보더라도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 즉 현인(賢人)이라 할 만한 사람들은 계속 나라에 봉사하게 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전임 정권에서 임명됐다고 해서 모두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반대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오로지 나라와 기관의 임무에 충성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장 인사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끝내려면 단기적으로는 이 세 번째 대안으로 법을 개정하고, 중기적으로는 기관장의 임기 폐지를 포함해 좀 더 정교하고 종합적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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