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만에 탄생한 문민 국방수장의 성공 조건[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30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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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더불어민주당 의원)가 지난달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제2연평해전 승전 23주년 기념식에서 전승비에 헌화하고 있다. 해군 제공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더불어민주당 의원)가 지난달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제2연평해전 승전 23주년 기념식에서 전승비에 헌화하고 있다. 해군 제공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64년 만에 국방부 장관에 문민 인사가 기용된 데는 ‘12·3 비상계엄’으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군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대의명분이 가장 클 것이다.

‘12·12 쿠데타’ 이후 45년 만에 군이 또다시 정치적 중립을 저버리면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장병들의 사기도 끝간 데 없이 추락했다. 최고 권력자의 불의에 맹종해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려 한 전·현직 군 지휘부는 엄정한 심판을 받고, 이에 동조한 군 내 세력은 발본색원돼야 할 것이다. 군이 다시는 비뚤어진 권력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고, ‘국민의 군대’로 바로 서도록 만드는 것이 신임 국방 수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군 내부에서 이뤄지던 주요 결정들을 문민 장관이 조율하고 통제하면서 국방 정책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예상된다. 군 안팎에서도 문민 국방 수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민주적 통제 원칙에 따라 군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국방 정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휴전 이후 대북 억제를 최우선시하는 국방 기조 탓에 정부 출범 초기를 제외하고 국방부 장관은 예외 없이 군 출신 일색이었다. 특히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요직을 독식하면서 국방부가 ‘육방부’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특정 군과 특정 출신에 편중된 군은 그 폐쇄성이 더 심화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능력보다는 지연과 근무연을 앞세운 ‘패거리 문화’가 군에 단단히 똬리를 틀었고, 이는 정치 군인의 군사 반란과 불법적 계엄 사태를 촉발시킨 자양분이 됐다.

문민 국방 수장은 외부의 시각을 반영해 군 내 폐습과 잘못된 관행을 일소하고, 위계적 불투명성을 개선하는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국방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군 내 인권을 증진하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국방 정책을 좀 더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다는 것도 문민 장관의 장점으로 꼽힌다. 군 출신 장관은 군 내 작전과 지휘 구조 등은 훤하지만 외교와 경제, 과학기술 등 외부 요소를 고려한 총합적 국방 정책을 설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민 장관은 군 안팎의 다양한 변수와 이해 관계를 조율함으로써 좀 더 전략적인 국방 운영이 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국민의 눈높이에서 군과 사회의 간극을 메우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장병과 그 가족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병영문화 개선을 비롯한 군을 발전시키는 기폭제로 활용한다면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는 더 탄탄해질 것이다. 세계 최대 군사강국인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문민 인사가 국방부 장관을 맡는 것도 이 같은 장점들 때문일 것이다.

반면 불안과 우려 섞인 시선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군사적 전문성과 현장 경험 부족은 문민 장관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북한의 기습 도발 등 분초를 다투는 위기 상황에서 군사적 식견과 작전적 이해가 미흡한 문민 장관은 적시적 결정과 명령을 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군 지휘부와의 엇박자나 의견 충돌이 빚어질 개연성도 있다.

군 내부의 반발과 리더십 확보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위계질서가 근간인 군 조직에서 오랜 기간 군에 몸담아 온 고위 장성 지휘관들이 민간 출신 장관의 지시를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 거부감이나 저항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군의 통솔력에 영향을 미쳐 자칫 정책 집행을 둘러싼 군 수뇌부 간 갈등과 마찰로 확대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문민 장관이 성공하려면 더욱 신뢰받는 강군을 건설하겠다는 정책적 의지와 함께 유능한 군 전문가들과의 긴밀한 협업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군 내 참모진의 전문성과 경험을 존중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국가전략 차원에서 국방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국방 개혁과 병영 문화 개선, K방산 부흥 등 주요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성과를 일궈내야 한다. 북핵 문제와 미중 패권 경쟁, 신흥 안보 위협 등 대한민국이 직면한 다층적 안보 위기 앞에서 국방은 무기로만 지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외교와 첨단 기술, 경제, 정보력이 총동원되는 ‘종합 안보’의 시대를 이끌어 나갈 문민 리더십은 분명히 필요한 시도라고 필자는 본다. 그 시도가 반드시 성공해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을 증진시키고, 바람직한 국방 리더십의 선례로 남길 기대한다.

#국방부#문민 장관#군 정치적 중립#국방 정책#병영 문화#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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