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지방자치 30년간 지역 행정서비스의 질은 크게 높아졌다. 지자체 예산도 1995년 42조 원에서 올해 326조 원으로 8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지만 지자체의 재정 충당 능력을 보여주는 재정자립도는 1997년 63%에서 올해 48.6%로 오히려 낮아졌다. 또한 국회의원들이 지방의회 의원의 공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방의원들이 주민들보다 오히려 해당 지역 국회의원의 눈치를 살피는 현실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낮다 보니 지자체들은 필요한 재원을 지방교부세 등 중앙정부의 보조금에 기대고 있다. 전체 지자체 243곳 중 104곳은 기본 인건비조차 지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정이 부실하다. 이런 지역에선 보조금이 삭감되면 진행 중인 사업조차 중단해야 할 처지이다 보니 중앙정부에 목을 매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지자체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심의하고 감시하는 것이 지방의원들의 할 일이다. 하지만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에 묶여 제 역할을 못 할 때가 많다. 일부 지역에선 의회가 같은 정당 소속인 단체장을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단순 거수기’로 전락했다. 이런 이유로 기초의원만이라도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여러 번 발의됐지만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잃지 않으려는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탓이다.
물론 전적으로 중앙정부나 국회의원 탓만 할 것도 아니다. 단체장 치적 쌓기를 위해 이곳저곳 시군에서 만든 모노레일, 관광열차 등은 낮은 이용률로 지방재정에 부담만 주고 있다. 전국적으로 열리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지역축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기보다는 단체장 홍보를 우선시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낭비를 걷어내고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일체가 돼서 기업 유치 등에 발벗고 나서지 않으면 진정한 분권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프랑스는 2003년 개헌 때 “프랑스의 조직은 분권화된다”는 내용을 헌법 1조에 추가해 지방분권을 국가 조직의 원리로 명문화했다. 지방이 자율성과 활력을 갖춰야만 지역 주민들의 삶을 구석구석 살피는 밀착행정을 펼칠 수 있다는 경험에서다. 중앙에 권한과 재정이 집중되는 현 구조로는 수도권 쏠림과 지역 불균형 심화를 막을 수 없다. 지방 스스로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지자체의 예산과 입법에 실질적 자율권을 보장하는 진짜 분권에 다가설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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