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대출 부자’만 양산한 관치 부동산의 실패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30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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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부국장
박용 부국장
6·3 대선이 끝난 뒤 서울 중구 한 아파트단지에 큰 평수보다 더 비싼 20평대 매물이 등장했다. 시세보다 2억 원 높게 매물을 내놓은 집주인이 갑자기 1억 원을 더 올려 호가가 뒤집힌 것이다. 단지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외국인이 집주인인데 팔 생각이 없고 가격만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은평구의 대단지 아파트는 대선 전 비싼 분양가 때문에 계약 포기자가 속출했는데 한 달 만에 무순위 청약 경쟁률이 10 대 1을 넘었다. 정부가 6억 원 넘는 주택담보대출을 막는 6·27 대출 규제를 꺼낸 건 부동산 불장이 서울 전역으로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의 부동산 중독, 서울 불장 키워

서울의 주택 가격은 연 소득의 10.1배로 전국 평균(3.9배)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집주인들은 몇억 원씩 호가를 턱턱 올린다. 은행 대출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은행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대출보다 담보가 확실한 주택 대출을 선호한다. 은행 자본 규제도 주택 대출이 기업 대출보다 위험 가중치가 낮다. 금융의 수도꼭지가 산업 부문보다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게 잘못 설계된 것이다.

여기에다 국토교통부가 디딤돌, 버팀목 등 미사여구를 붙여 저리로 푼 주택 정책대출이 9년 만에 200조 원이 늘었다. 주택 관련 대출 대비 정책대출 비중은 2015년 17%에서 지난해 말 28%로 올랐다. 형평성을 이유로 신생아 대출 소득 상한을 연 소득 2억 원으로 높이자 작년 말 5대 은행 신규 주택담보대출 중 정책대출 비중이 56%까지 치솟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경기 침체 우려에도 서울 집값이 뛰는 건 정부가 계속 뒷돈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등은 정책대출이 9억 원 이하 주택만 지원해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돈의 순환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한 ‘호텔경제론’으로도 간단히 반박할 수 있는 어설픈 해명이다. 예를 들어 김모 씨가 정책대출을 받아 수도권에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구입하면, 김 씨에게 집을 판 이모 씨는 이 돈에 은행 대출을 얹어 서울에 입성하고, 이 씨에게 집을 판 박모 씨는 대출을 더 얹어 서울 강남에 입성하는 식의 돈의 순환이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서울에는 빚으로 만들어진 집과 이를 보유한 ‘대출 부자’가 급증했다.

국토부가 뿌린 주택 정책대출은 심지어 무주택자 등이 낮은 이자를 무릅쓰고 내 집 마련을 위해 차곡차곡 모은 청약저축 등으로 조성된 주택도시기금에서 나간다. 서민을 위한 주택 공급을 위해 쓰여야 할 이 돈이 정책대출과 전세보증 정책금융에 동원되면서 부동산 시장을 위한 버팀목으로 변질됐다. 주택 공급 우려는 여전한데 정책금융에 돈이 흘러 들어가 여윳돈이 고갈되고 있다. 대출 부자를 위해 청약저축 가입자가 희생하는 기울어진 금융 운동장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집은 성실하게 모은 돈이 아니라 급전이라도 당겨서 당장 사야 하는 투기 대상이라는 인식을 잠재우지 못한다. 투기 심리가 불붙으면 주택을 식빵처럼 찍어낸다고 해도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관치 부동산 실패부터 바로잡아야

서울 불장은 금융규제와 정책대출로 운영되는 부동산 관치의 실패다. 시장 참여자는 정부와 한국은행이라는 DJ가 요란한 댄스 음악을 틀 때 격렬하게 몸을 흔든 죄밖에 없다. 이 결과 한국은 최악의 가계 빚 대국이 됐다. 이제는 경기를 살리려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가계 빚이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채의 덫’에 걸렸다. 금융당국과 한은이 금융 시스템 안정에 매달리고 국토부는 건설시장이 무너질까 봐 조바심을 내지만 망국병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는 실패했다. 6·27 규제는 투기 심리 확산을 막는 초기 방화선이다. 대통령실이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사령탑으로 나서 시장에 불을 지른 부동산 관치의 잘못된 인센티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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