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셰프와 속 깊은 주인이 정성으로 빚은 한식의 맛[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3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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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토속음식점 ‘마포나루’ 불고기쌈밥. 간이 골고루 잘 배어 있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토속음식점 ‘마포나루’ 불고기쌈밥. 간이 골고루 잘 배어 있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서울 마포는 조선시대부터 지역 산물의 물류 거점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런 마포에 한식으로 인근 식객들을 사로잡은 노포가 있다. 올해로 35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마포나루’다. 마포에서만 본점과 직영점 등 두 군데 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찾은 곳은 서울 지하철 5호선 공덕역과 마포역 중간의 도화동 직영점. 이 코너에 그간 소개했던 노포 중 아마도 규모가 가장 클 듯싶다. 자리만 120석이고 매장 면적은 약 661㎡(약 200평)에 이른다.

필자 일행은 불고기쌈밥 정식(2인·3만4000원)을 시켰다. 두꺼운 무쇠 철판에 바삭하게 구워진 불고기는 양념이 골고루 배어 있고 간도 잘 맞았다. 쌈 채소는 텃밭에서 바로 따온 느낌이 들 만큼 신선하다. 함께 나온 콩나물배춧국은 또 어찌 그리 구수하고 시원한지. 김치도 너무 달지 않은 데다 익힘의 정도도 딱 알맞다.

서울 강북의 대표적 오피스타운인 마포역 지역에서 젊은 직장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직접 맛을 보니 비결을 단박에 알 것 같다. 한식을 상업적으로 대중화한 동시에 고급화 전략을 포기하지 않은 데 있다. 한 끼를 채우는 데 급급한 음식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정성껏 차린 요리를 맛보는 느낌까지 안겨준다고 할까. 이 때문인지 마포나루에는 외국인 손님도 많이 찾는다.

음식이 고급스럽다는 건 뭘까. 그 요체는 정갈함일 것이다. 한식은 그 재료에서 워낙 다양하고 양념이 발달해 시각적인 미학을 구현하기 어렵다. 그런데 마포나루가 내놓는 음식들은 이날 함께 맛본 홍어무침이나 해물파전이 그랬듯 한결같이 깔끔하기가 이를 데 없다.

사실 이 집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젊은 셰프 김우중 씨(29)의 영향도 크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인데, 충남 보령시 출신인 그는 원래 중학교 때까지 탁구선수로 도내 대회 포디움까지 올랐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열여섯 살에 셰프의 길을 걸었다. 원래는 일식집에서 서빙을 하다가 일머리가 있는 것을 알아본 사장이 요리를 권한 게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후 뜻한 바가 있어 요즘 모두가 꺼린다는 한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젊은 셰프들이 한식을 꺼리는 이유는 음식을 준비하는 데 워낙 손이 많이 가는 데다 모두가 너무 잘 아는 음식이라 평하는 입맛들이 까다롭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김 셰프는 “다들 어렵다고 여기니 오히려 이 길을 걷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직접 키운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여는 게 그의 꿈이다.

이 집 계산대에는 K드라마에 장모님으로 나올 법한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인상의 여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포나루의 대표 하영옥 씨다. 하 대표는 김 셰프의 됨됨이와 가능성을 알아보고 과감하게 주방을 맡긴 주인공이다. 얼마 전 이 칼럼에서 ‘노포는 그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의 삶까지 깊이 관여하고 책임지는 곳’이라고 쓴 적이 있다. 마포나루에선 자신의 삶과 꿈을 걸고 치열하면서도 정직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일당백의 젊고 성실한 셰프와 사람을 볼 줄 아는 비범하고 속 깊은 경영자가 한식의 성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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