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찐윤은 영남·강원 의원 20∼30명”
“언더 협조 없이는 원내대표도 꿈 못꿔”
‘투명인간’ 국힘… 뭘 해도 주목 못 받아
윤핵관-물밑 찐윤 청산이 혁신의 기준
김승련 논설실장
야당이 된 국민의힘에 ‘언더(under) 찐윤’이라는 수면 아래 실세 그룹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지난달 처음 들었다. 국민의힘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김상욱 의원이 몇 군데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언더 찐윤은) 본인들 이름이 뉴스에 거론되는 것도 반기지 않는다. 똘똘 뭉쳐 있고, 지역구 행사 열심히 다닌다. 대인 관계가 참 좋다. 20∼30명쯤 된다. 대구·경북, 부산·경남, 울산, 강원에 있다. (계엄과 탄핵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지역구에서 김문수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크게 이겼으니까.”
갈등을 겪다 탈당한 의원의 말이니, 감정과 과장이 섞였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며칠 뒤 원내대표를 지낸 김성태 전 의원이 “김상욱 의원 말이 맞다”고 동의하고 나섰길래 이들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김 전 의원에게 따로 물어보니 “윤 대통령의 술친구 하던 의원도 여기에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들 협조 없이는 원내대표 같은 핵심 당직을 맡는 게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대단한 결사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권성동 이철규 윤상현 나경원 등 전면에 서는 친윤 의원 말고, 늘 말없이 무리를 이루던 의원들을 가리킨 것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변화를 거부하고 이익을 챙긴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두 사람의 공개 발언 이후 당에서 언더 찐윤을 거론하는 의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당내 인사에게서 “당내에선 이들과 내놓고 싸우는 게 부담스러워 입을 안 여는 것”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다른 의원은 “이들 찐윤은 두려움 때문에 더 뭉치고 있다. 제대로 된 리더가 등장하는 걸 막고 싶을 거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당에는 묘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국민의힘이 건강함을 잃은 것은 소장파 정치의 실종과 궤를 같이한다. 1990년대 홍준표 김문수, 2000년대 오세훈 원희룡 남경필처럼 때때로 당에 반기를 든 초재선 그룹들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윤석열 체제에서도 초재선의 집단행동이 있었지만, 목표는 친윤 이익 챙기기였다. 비상계엄 이후로 좁혀 보면 더 선명하다. 계엄 해제 표결에 집단 불참했고, 탄핵에 찬성했다며 한동훈을 내몰았고, 한덕수 대선 후보 옹립을 위해 연판장 돌렸고, 김용태의 ‘탄핵 반대 당론의 백지화’를 흐지부지시켰다.
이제 국민의힘이 버틸 곳은 민심밖에 없다. 그 민심은 신뢰할 만한 스피커를 앞세우고, 똑떨어지는 논리로 정부와 여당을 비판할 때 힘을 얻는다. 민주당이 대통령실 특활비를 여당이 됐다면서 전액 살려낸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안면몰수 행위였다. 국민의힘은 비판하긴 했는데, 민주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용산 정무수석만 나서 잘못을 인정했을 뿐이다. 놀라운 점은 국민 여론이 국민의힘의 비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야당이 투명인간 취급 받는다는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민의힘에는 안철수 혁신위가 출범했다. 계엄과 대통령을 감싸고돈 것을 자기 언어로 반성하는 것이 제1 과제일 것이다. 지금은 사과하고 대선 백서를 낸다고 해서 큰 감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단계다. 결국 친윤 핵심에 대한 인적 청산만이 국민들에게 변화의 간절함을 전달할 방법이다. 다른 어떤 혁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 청산의 방식으론 책임자 2선 후퇴에서 3년 뒤 총선 불출마, 당장 의원직 사퇴까지 여러 선택이 있다. 인위적 청산이건, 당사자의 자기희생이건 그건 나중 문제다. “종양과 고름을 짜내겠다”던 안 위원장 말은 이런 걸 가리켰을 것이다.
윤핵관이나 친윤 영남 중진의 퇴장만 떠올릴 일이 아니다. 김상욱, 김성태 두 사람이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 ‘똘똘 뭉친 무명의 국회의원 결사체’를 주도했던 이들도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안철수의 혁신카드를 ‘언더 찐윤’과 유대가 깊고, 이들의 후원 속에 당선된 송언석 원내대표가 받아들이겠느냐는 점이다. 안 위원장의 혁신 싸움이 어려운 이유다.
당 내부에선 ‘바깥의 힘’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특검 수사, 특히 16개 사건을 다루는 김건희 특검 수사를 말한다.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 부부에 선을 댔던 ‘언더 인물’들이 등장한다면 철옹성 같던 찐윤 연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보수 본당인 국민의힘으로선 서글픈 상황이다.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을 능력을 잃은 정당은 존재 이유가 있나. 또 “독재 정치”라며 비판하던 3개 특검법이 자당 환부를 도려내주길 기대하는 정치는 또 뭔가. 국민의힘은 넘어져 있다. 일어서는 과정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진통이 커지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그 핵심에서 언더 찐윤과의 싸움이 빠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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