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French Women Don’t Get Fat).’ 2004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책의 제목이다. 저자 미레유 길리아노는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의 미국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프랑스 여성의 날씬한 체형을 ‘절제된 미식’이란 키워드로 풀어낸다. 풍성한 버터, 바게트, 치즈, 와인을 즐기면서도 살찌지 않는 프랑스인의 식습관은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프랑스를 처음 방문한 이들이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이 나라는 고열량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데 왜 살찐 사람이 거의 없을까?”
그 해답은 생각보다 일상적인 풍경 속에 있다. 파리의 카페나 비스트로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프랑스인들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모습이 있다. 이들의 식사 방식은 단순히 음식의 종류보다 ‘먹는 태도’에 훨씬 더 방점이 찍혀 있다. 그들은 음식을 천천히, 조금씩 먹는다. 식사를 코스로 즐기되, 고기에는 늘 야채 가니시가 곁들여진다. 식사 중간에 간식을 먹는 일도 드물다. 와인을 곁들이지만 과음을 하진 않는다. 그저 식욕을 돋우기 위한 목적으로 한두 잔 마신다. 식사는 곧 삶의 리듬이자 하나의 ‘사건’이다. 저녁 식사는 보통 두세 시간이 기본이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서너 시간에 걸쳐 10코스 이상을 즐기기도 한다.
프랑스에는 ‘2차 문화’도 없다. 누군가와 몇 시간을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진심 어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상상하기 어렵다.
일상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인은 도시 내에서 걷는 일이 많고,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적극 활용한다.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고, 아침이면 공원 곳곳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굳이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생활 자체가 활동적이다.
장 보는 방식 또한 우리와 많이 다르다. 파리 시내에는 82개의 노천 시장이 있고, 그중 3곳은 유기농 시장이다. 카르푸나 오샹 같은 대형마트에서 대량 구매하기보다는 동네 마켓에서 3∼4일치 분량만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구입하는 습관이 자연스럽다. 농부가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을 사며 상인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단순한 쇼핑이 아닌 삶의 한 장면이다.
프랑스 정부의 영양정책도 이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TV, 라디오, 인터넷에서 식품 광고를 할 때 반드시 건강 경고 문구를 삽입해야 한다. “하루에 과일과 채소 다섯 가지 이상을 섭취하세요”, “간식을 피하세요” 같은 문구는 국가 영양 건강 프로그램(PNNS)의 일환으로, 2000년대 초반 아동 비만이 급증하자 도입됐다. 광고를 보면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메시지가 무의식에 각인된다.
프랑스 여자가 살찌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적게 먹기 때문이 아니다. 음식과 삶에 대한 태도, 일상에 녹아든 움직임과 사려 깊은 식사 습관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들의 식탁 위에는 칼로리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절제된 미식과 삶의 균형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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