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이주노동자 공사장서 온열질환 숨져
똑같은 폭염에도 취약노동자 위험도 높아
폭염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의무화
남은 과제에도 ‘생명 우선’ 인식 계기 되길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7월 7일 베트남에서 온 23세 건설노동자가 경북 구미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앉아 있다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고인의 체온은 40도 이상이었고, 그날의 구미 최고기온은 37도에 이르렀다. 여름만 되면 전국 곳곳에서 온열질환 사상자가 나온다. 여름 기온이 갈수록 올라가는 근본적 원인으로는 기후위기가 꼽힌다. 그러나 그냥 너무 더워서가 아니라, 더운데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날씨 탓이 아니다.
아파도, 힘들어도 충분히 쉬지 않는 것은 한국 사회의 오랜 병폐다. 한국은 휴식에 유독 박하다. 회사 생활에서도 이틀 이상의 질병휴가는 눈치가 보여 쉽지 않다. 긴급성을 따지지 않는 주 7일 배송, 새벽배송, 당일배송이 경쟁적으로 홍보된다. ‘주 52시간’ 근로 제한이 너무 박하니 더 오랜 시간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좀 덜 일해야 한다, 쉬면서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기업에 부담’, ‘경제 성장 저해’라는 말이 자동응답처럼 튀어나온다. 기계도 쓰면 닳고 정비가 필요한데, 하물며 사람을 쓰면서 생명에게 필요한 휴식과 회복에 투입되는 시간과 자원을 낭비로 여긴다.
여름마다 일터에서 온열질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의 문제다. 이는 노동력을 극한까지 동원해 경제 성장을 이룬 역사적 경험이 지나치게 강렬한 탓일 수 있다. 에어컨 앞에 앉아 “내가 젊었을 적에는 참고 일했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이 있는 탓일 수도 있다. 일자리가 양극화되면서 냉방 공간에서 일하다 점심시간에나 밖에 나와 몇 걸음 걸을 뿐인 사람들과 공사장이나 물류창고같이 기온의 영향을 직접 받는 장소에서 종일 일하는 사람들의 경험이 서로 섞이지 못해 문제의식이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의 휴식권과 건강권에 대한 보편적 인식은 부족한데 여름 날씨는 갈수록 더워지는 상황에서, 폭염기 노동을 자율에 맡겨둘 순 없다. 당장 이번에 사고가 난 구미 현장만 보아도 그렇다. 이 현장의 모든 노동자가 더운데도 무리해서 일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혹서기 단축근무 협약으로 오후 1시에 퇴근했다. 가장 더운 시간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만 남아 일했고, 그 결과 23세 베트남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자율에 맡기면 똑같은 더위에도 협상력이 약하고 입장이 취약한 노동자가 더 위험해진다. 날씨가 모두에게 똑같다면, 모두 똑같이 더 일하지도 더 시키지도 못하게 제도로 막아야 한다.
지난주 고용노동부령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취해야 하는 보건 조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규정이다.
이번 개정으로 체감온도 31도 이상인 작업 장소에서의 장시간 노동에는 ‘폭염작업’이란 이름이 붙었다. 폭염작업 중에서도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장소에서의 작업에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시간이 부여된다. 실내의 경우 냉방장치를 마련했어도 폭염작업이 계속되면 휴식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사업주에게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하면 구급대에 연락할 의무, 폭염작업 장소의 체감온도와 조치사항을 기록하고 보관할 의무도 부여됐다. 너무 더우면 물 많이 마시고 알아서 쉬라는 식의 예방 캠페인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개입 기준이 마침내 마련된 것이다.
아직 남은 과제는 많다. 우선 폭염의 영향을 받으나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포섭되지 못하는 배달라이더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령 자영농, 영세사업소 근로자 등의 작업 현장은 점검과 단속이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사각지대에도 폭염작업이라는 개념을 알리고, 안전을 위한 휴식을 홍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한 경우 공공의 휴식공간과 냉방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이 모든 일에는 적잖은 비용이 들 것이다. 근로감독관 등 공무원들이 폭염작업을 점검·감독하다가 도리어 무더운 날씨로 인한 질병이나 과로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충원도 필요하다. 폭염작업 위험이 높은 건설업종은 대개 겹겹이 갑을관계인 하도급 구조라 휴식시간 부여 등 건강권 보호에 따른 비용이 원청에서 하청으로 일방적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이 모든 쟁점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우면 모두가 함께 쉬어야 한다. 너무 더운데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 휴식시간은 낭비도 생산성 저해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이 우선이다. 이번 여름, 이번 규칙 개정이 기본적 가치에 모두가 동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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