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곳곳에서 사투 벌이며 인명 구한 ‘괴물 폭우’ 속 의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1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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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광주 동구에서 급류에 휩쓸린 시민을 구조하는 모습. 독자 제공
17일 광주 동구에서 급류에 휩쓸린 시민을 구조하는 모습. 독자 제공
200년 만의 기습 폭우였다. 도심 도로와 커피숍이 순식간에 들이닥친 흙탕물에 잠겼고, 읍면 지역 마을들은 둑이 터지면서 물바다가 되거나 산사태로 쏟아져 내린 돌무더기에 초토화됐다. 지난 닷새간 전국에 내린 극한 호우로 급류에 휩쓸리고 흙더미에 깔려 숨진 사람이 19명, 실종자가 9명이다. 야행성 폭우, 돌발성 폭우에 아내와 사위를 잃은 70대 노인이 망연자실이고, 20대 딸을 여읜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장마 끝은 없다더니 괴물 폭우 끝은 더욱 처참하다.

전문 구조 인력이 손쓸 새 없이 동시다발로 피해가 발생하는 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시민들이 귀한 생명을 구조했다는 소식이다. 광주 동구에서는 급류 속 도로 틈에 두 다리가 끼인 70대 노인을 자동차 정비소 직원들이 20분간의 사투 끝에 살려냈다. 건장한 남성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물살인 데다 돌덩이와 타이어에 승용차까지 떠내려오는 상황이었지만 직원들은 침착하게 모든 장애물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노인을 구해냈다. 구조를 주도한 정비소 사장은 다리 곳곳이 찢기고 멍든 몸으로 “빗물을 1리터는 들이마신 것 같다”면서도 무사히 구해내 뿌듯하다고 했다.

폭우로 전 군민 대피령이 내려진 경남 산청군 송계마을에서는 불어난 물에 고립된 주민 2명을 이장이 헤엄쳐 접근해 대피시켰다. 병정마을에선 산사태에 집 밖으로 튕겨나온 94세 할머니를 업고 구급차까지 700m를 뛰어 살려낸 20대 손자 얘기가 화제다. 경북 청도군에서는 하굣길 안전을 지도하던 교사가 하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60대 남성을 구했고, 울산 태화강에선 침수된 차량에 갇힌 2명이 시민들의 신속한 신고로 구조됐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명언을 깨우쳐 준 의인들 소식이 물난리 끝에 드는 볕처럼 반갑고 고맙다.

괴물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피해 지역에서는 구조대원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대대적인 실종자 수색을 벌이고 있다. 마을 주민들도 잔해를 들춰가며 이웃 찾는 일을 돕고 있다. 너무 늦지 않게 생존자를 찾아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일 것이다. 유례없는 폭우였다고 하나 산사태 취약 지역 관리가 허술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통신장애로 재난 문자를 받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해 지역 주민들의 재기를 돕고 극단 기후에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이 없도록 기후 재난 대책을 든든히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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