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약 13.9조 원 대부분 국채 발행해 조달
현금 지원은 중상층엔 소비 진작 효과 제한
LG전자 인수할 돈, 지속가능 분야에 썼다면
예산은 ‘국가 미래 설계 도구’임을 인식해야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정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에게 1, 2차에 걸쳐 1인당 15만∼55만 원 현금성 지원금을 지급한다. 총 지원 규모는 약 13조9000억 원으로, 그중 12조2000억 원은 국비로 충당된다. 재원은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조달되고, 상당 부분은 신규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된다. 그 결과 우리 국가채무는 1300조 원을 넘어서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9%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번 지원금은 당장의 소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빚으로 남게 된다.
물론 추경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헌법 56조와 국가재정법 89조는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 중대한 사정 변화가 있을 경우 추경 편성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추경이 매년 반복되는 ‘정치적 결단’의 수단처럼 활용되고 있는 듯하다. 이번 민생회복 지원금 역시 법적 요건은 갖췄지만, 그 취지와 필요성이 과연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정책의 명분은 ‘민생 회복’이다. 몇십만 원이 생명을 붙잡는 돈이 될 수도 있고, 일시적 지원이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순간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지원이 국가시스템 설계보다 더 우선적이고 긴급한 중대한 변화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해봐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 1차 재난지원금에 대한 평가에서 소비쿠폰이 특정 업종의 매출에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됐지만, 경기 전반의 반등 효과는 미미했다고 진단했다. 대부분의 가구는 평소 하던 소비를 지원금으로 대체했을 뿐, 새로운 소비는 크게 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계소비성향(MPC)’으로 설명된다. 소득 하위층은 추가 소득을 소비로 전환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중상위층은 기존 소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전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보편적 방식은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가장 취약한 계층인 소득 하위 20%는 이미 기초생활보장, 근로장려세제(EITC), 의료급여, 긴급 생계비 등 복지 안전망으로 다층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물론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사회 문제는 단순한 소득 부족이 아니라 정신건강, 고립, 중독, 주거 불안 등 복합적인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문제에는 단순한 현금 지원보다 ‘커뮤니티 케어 시스템’, ‘심리 상담’, ‘위기 개입망’ 등 구조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지원금이 경기 심리를 살리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비자와 기업의 심리는 금리, 실업률, 실질소득, 부동산 가격 같은 거시경제 지표와 더 밀접하게 연동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바로 ‘기회비용’이다. 13조 원이라는 예산을 민생 지원금에 투입했다는 것은, 같은 금액을 다른 분야에는 투입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 비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보자. LG전자의 현재 시가총액은 약 12조7000억 원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7만4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번 지원금은 LG전자 한 회사를 통째로 인수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다. 만약 이 재정이 첨단 산업이나 전략기업에 투자됐다면,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십 년간 안정적인 소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소비는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투자는 지속 가능한 결과를 남긴다.
해외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 위기 당시 싱가포르는 현금 지급보다는 고용 유지 보조금, 전략산업 투자, 직업 재교육에 집중했다. 그 결과 실업률을 3% 안팎으로 관리하며 빠르게 회복에 성공했다. 미국의 ‘CARES Act(Coronavirus Aid, Relief, and Economic Security Act)’ 역시 단순 현금 지급보다는 고용 유지 조건부 ‘급여보호대출(PPP·Paycheck Protection Program)’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정책은 선택의 예술이다. 우리는 이번에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누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미래 세대의 부담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포기한 기회비용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재정은 그 자체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수단이다. 결국 우리는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를 통해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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