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된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캐비닛 룸에서 한국 측 협상단과 함께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 채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지영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트럼프 대통령,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박정성 무역투자실장,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백악관 X
한미 관세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지만, 이로 인해 한국과 미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은 완전히 무력화됐다. 북미지역 FTA인 ‘CUSMA’를 미국과 맺고 있는 캐나다, 멕시코는 아직 협상을 끝내지 못했지만, 무관세 혜택은 종료될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을 세계 5위 수출국으로 키워준 FTA 중심의 자유무역 질서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전쟁으로 인해 붕괴하고 있다.
이번 협상 타결로 한미 FTA에 따라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되던 한국산 제품에는 15%의 상호관세가 붙는다. 한국산 자동차·부품도 기존에 2.5% 관세를 물고 있던 일본·유럽연합(EU)과 같은 15% 관세가 붙어 ‘FTA 프리미엄’이 없어진다. 50% 고관세를 물어야 하는 철강업체들은 미국이란 최대 수출시장을 잃을 위기다. 반도체, 의약품에도 곧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K뷰티 제품, 불닭볶음면 등 K식품도 관세가 붙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다. 2012년 발효돼 13년간 대미 수출을 견인해온 한미 FTA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미국은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관세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현대자동차·기아도 수출 차종을 모두 미국 땅에서 만들긴 역부족이다. 현지 생산 비중이 일본 업체보다 낮아 관세 불이익이 불가피하다. 현대제철이 루이지애나에 제철소 설립을 준비 중이지만, US스틸을 인수한 일본제철에 한발 뒤처졌다. 캐나다·멕시코 공장에서 만든 가전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던 삼성전자, LG전자도 CUSMA 폐기에 따른 관세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그만큼 미국을 대신할 수출시장을 찾는 일이 급해졌다. EU·동남아·남미·중동으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메가 FTA’인데도 일본 주도란 이유로 한국은 가입을 꺼려 왔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에는 소나기를 피한 것이다. 근본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무역으로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며 관세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미국의 통상 기조는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될 거란 진단이다. 기업과 정부가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수출·산업 전략을 처음부터 새로 짜지 않고는 ‘수출 한국’의 신화를 이어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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