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 워크숍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2025.8.1 이재명 대통령 SNS
학교 때 선생님한테 혼자 칭찬받았을 때 기쁨은 몇십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른도, 영웅도 다르지 않다. 아첨을 싫어했던 나폴레옹도 부하가 “각하께서 칭찬을 싫어하시는 그 점을 존경한다”고 하자 흐뭇해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국민주권정부 고위공직자 워크숍’에서 김현지 총무비서관을 콕 찍어 언급했다. 성남시장 때 일화지만 김민석 총리를 비롯한 장차관과 실장급,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28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이 한 사람의 실명을 굳이 말한 의미는 가볍지 않다.
“결식아동 급식카드가 있었어요. 옛날에. 그 ‘결식아동 카드’라는 게 딱 표시가 돼 있어요. 김현지 (당시) 보좌관이 지적해가지고 고쳤는데, 아 그래? 그래서 제가 일반 신용(카드)하고 똑같이 만들어 줬죠.”
최근 일부 지자체가 민생회복 소비쿠폰카드를 지급하며 금액별 색깔 차이를 두어 물의를 빚었는데 공직자는 공급자 중심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성남라인’ 김현지는 ‘공급자 사고’도 없고 이 대통령이 그날 인사 원칙으로 강조한 충직과 성실, 역량을 갖춘 인사라는 최상급 칭찬이었다.
그럼에도 불안하다. 2인자 없는 이재명 정부에서 유독 이 대통령이 김현지를 언급함으로써 너무 일찍 실세로 부각됐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김현지는 보좌진 갑질 논란으로 지난달 23일 자진 사퇴하는 척 물러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에게 그날 오후 2시경 ‘사퇴해야 할 것 같다’는 전화를 한 것으로 한겨레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물론 대통령실은 부인했다. 하지만 이 신문이 보도를 철회하지 않은 걸 보면 사실일 공산이 크다. 김현지가 이 대통령과 소통하고 연락했을 터다.
장관급 인사 통보는 대개 비서실장 또는 정무수석이 한다. 그걸 총무비서관 김현지가 했다면, 보통 의미가 아니다. 권력은 대통령과의 거리에 달려 있다. 강선우는 2시 반경 강훈식 비서실장에게 사퇴 의사를 전했고, 실장의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별말 없었다고 했다. 이로써 “통님의 눈이 높으시다”며 딸랑댄 실장의 권력서열은 총무비서관보다 높지 않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총무비서관은 대통령실 재무 등 안살림이 고유 업무다. 대통령실 직원 인사도 맡지만 장차관급 인사까지 관여하는 건 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림자 참모’를 자처하는 김현지는 밥도 혼자 먹을 만큼 사심 없고 조심스럽다고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김현지 말은 듣는다는 말이 나도는 지금, 김현지는 이미 2인자다. 항간에선 “이재명 정부에서 실세 중 실세는 김현지 총무비서관”이라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를 모르지 않을 이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 워크숍에서 김현지 한 사람을 똑 부러지게 언급했다. 대통령이 신뢰하는 사람이니 흔들지 말라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마치 윤석열 정권 때 대통령에게 부인 김건희의 활동 자제를 촉구하자 “국정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일인데 그걸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 다시 써야 된다”고 말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성공을 바란다면 실패를 상상하라고 했다. 이유를 따져 보고 미리 고쳐 실패를 막는 사전부검(pre-mortem)이다. 윤 정권 출범 초, 만일 정권이 실패한다면 김건희 때문일 것이라며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때 ‘문고리 3인방’ 중 하나였던 총무비서관 이재만은 인사위원회까지 참여했다. 비선실세에 대해 입 꾹 닫고 있다 결국 대통령 탄핵과 함께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혐의로 처벌받았다. ‘만사형통(萬事兄通)’ 소리가 나왔던 이명박 대통령 때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도 인사와 정무, 감찰 등 청와대 핵심 기능까지 좌우하다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 국민의 성공이다. 만에 하나 잘못된다면, 대통령실에 포진한 성남라인의 집단사고와 ‘만사현통’ 때문이 아닐까 우려가 나온다. 김현지의 인사 관여가 과연 유능한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경륜과 식견 있는 비서실장과 수석들 대신 성남시장 시절 참모 말만 듣는다면 인력 낭비, 세금 낭비다.
차라리 강훈식 비서실장이 김현지에게 직급에 맞는 일만 맡겨 대통령실 기강을 잡든지, 수석 승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기 바란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김현지가 수석으로 조기 승진한다면 공직자의 역할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지 프로필과 재산의 투명한 공개로 국민 궁금증이 풀어지는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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