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의 참맛[이준식의 한시 한 수]〈328〉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7일 2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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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집안이 숲속 연못에서 여름 더위 식히나니, 속세를 떠나온 듯 탁 트이는 마음.

누가 맑은 바람의 값을 따지는가. 한가로움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으리니.
고기 얻은 물새처럼 늘 스스로 만족하고, 비 머금은 산마루 구름처럼 한가로이 오락가락.

술 취하면 무엇이 몽롱한 정신을 깨울까. 하고많은 연꽃 향기와 머리맡의 청산이지.

(盡室林塘滌暑煩, 曠然如不在塵寰. 誰人敢議清風價, 無樂能過百日閑.

水鳥得魚長自足, 嶺雲含雨只空還. 酒闌何物醒魂夢, 萬柄蓮香一枕山.)

―‘북쪽 연못가의 피서(북당피서·北塘避暑)’ 한기(韓琦·1008∼1075)


무더위와 번잡한 세상사를 비켜나 시인은 숲속 연못을 찾는다. 온 집안을 동반했다니 꽤 느긋한 일정을 잡았나 보다. 숲과 바람, 연못과 연꽃, 가까이 앉은 청산 그리고 술. 이로써 마음이 탁 트이자 시인은 한결 밝아지고 너그러워진다. 숲속엔 청량한 바람이 불고 연못에는 연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고기를 얻은 물새가 더 이상 욕심내지 않듯, 비를 품은 산마루의 구름이 한가로이 오가듯, 시인은 그 풍경 속에서 고즈넉이 내면의 먼지를 털어낸다. 그 속에선 연꽃 향기와 청산이 몽롱한 취기조차 말끔히 거두어 간다.

순전한 ‘자연산 힐링’을 빌려 마음을 정갈하게 닦아내는 것, 이게 피서의 참맛이리라. 요란 떨지 않고 성급하게 감각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만사가 천천히 흘러가게 두는 것, 이게 옛 선비들이 염두에 둔 피서의 미덕일 것이다. 또 시인은 이 모든 순간이 자연의 오묘한 은덕이라는 걸 은밀히 암시하는 듯하다.

#피서#여름 더위#연못#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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