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 인사이트]워라밸 장려하면서 직원 불이익 주는 역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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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원격근무가 확산되면서 업무와 개인생활의 경계가 급격히 흐려졌다. 근무시간 외에도 스마트폰 알림과 메시지가 이어지며 상시 대기 상태가 일상이 됐고, 피로와 스트레스 누적으로 번아웃 위험이 커졌다. 이는 직원의 건강은 물론이고 기업의 생산성과 혁신에도 악영향을 준다. 이에 많은 기업이 웰니스 프로그램과 ‘워라밸(Work-Life Balance)’ 정책을 도입하고,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와 회의나 연락의 제한을 권고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기업들이 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최근 한 연구 결과는 이러한 노력의 이면에 역설적인 모순이 존재함을 보여 준다. 회사가 공식적으로는 근로자의 퇴근 후 업무 단절을 장려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실천하는 직원이 조용히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번아웃을 부추기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과 스페인 공동 연구팀은 미국과 유럽에서 총 16건의 실험을 진행했다. 총 7800명의 참가자에게 ‘관리자’ 역할을 맡기고 업무 성과는 동일하지만, 업무와 일상을 분리하는 전략의 채택 여부만 다른 가상 직원들의 프로필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은 주말 여행 기간 부재중 자동 회신을 설정했지만, 다른 직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관리자들은 주말 동안 업무와 단절된 직원이 업무에 복귀하면 더 재충전되고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일관되게 평가해 업무 분리가 직원 성과에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런데 이들은 동시에 그 직원을 동료보다 덜 헌신적이고 승진 가능성이 낮다고 일관되게 평가해 불이익을 줬다. 이러한 불이익은 △해당 직원이 관리자의 직속 부하인 경우 △객관적으로 업무 능력이 더 뛰어난 경우 △휴가 기간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은 경우 △업무 분리의 사유가 아픈 가족 돌봄 등 정당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리더들이 업무 단절의 효과를 알면서도 여전히 ‘연결 유지’를 헌신의 신호로 해석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스스로 워라밸을 중시한다고 밝힌 관리자나 회사 차원에서 업무 분리를 적극 장려한다고 답한 관리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항상 회사와 연결된 직원’을 더 헌신적으로 보고 보상하는 경향은 조직 전반에 퍼져 있었고, 이는 과로를 미덕으로 만드는 ‘업무 분리의 역설(detachment paradox)’을 강화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헌신’과 ‘가시성’을 동일시하는 오래된 업무 문화가 있다. 밤늦게까지 이메일을 보내거나 휴가를 반납하는 직원은 ‘더 노력한다’라는 인상을 주지만 정시 퇴근을 지키는 직원은 성과가 같거나 오히려 높더라도 열정이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이런 인식은 “업무 경계를 지키는 직원이 장기적으로 더 활기차고 번아웃 위험이 낮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연구진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으려면 리더십 차원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첫째, 평가 기준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최고 평가를 받는 직원이 ‘항상 대기 상태’인 사람인지, 아니면 실제로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인지 구분해야 한다. 둘째, 헌신의 정의를 재설정해야 한다. 응답 속도나 근무시간이 아니라 창출한 결과물과 조직에 미친 영향이 평가의 중심이 돼야 한다. 셋째, 근무시간 준수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근무 외 시간에는 연락하지 않는 문화를 관리자가 직접 만들어야 하며 초과근무에는 금전적 또는 시간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넷째, 명확하고 공식적인 정책이 중요하다. ‘주말 이메일 금지’와 같은 규정은 무의식적 편향을 완화하고 워라밸을 지키는 행위를 규범으로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다섯째, 관리자 교육과 인식 개선이 필수다. 관리자가 자신의 편향을 자각하고 성과 평가·승진·채용 과정에서 워라밸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연구팀은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할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표면적인 구호나 홍보성 캠페인이 아니라 전사적인 리더의 실천과 일관된 제도 운용이 뒤따를 때 문화가 바뀔 수 있다. 특히 승진과 보상 체계에서 워라밸을 지키는 직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직장에서 헌신의 기준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과를 위한 에너지 관리 능력’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최고의 직원은 번아웃 직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스위치를 끄고 휴식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조직에 가장 큰 가치를 제공한다.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디지털 아티클 ‘리더는 워라밸 챙기는 팀원을 보복한다?’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코로나19#재택근무#번아웃#업무 분리#워라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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