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강원의 한 골프장에는 빨간 바지를 입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자외선 차단용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남성이 등장했다. 같이 골프 친 4명 중 얼굴을 빈틈이 안 보일 정도로 철저하게 가린 사람은 그뿐이었다. 라운딩 중 그늘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마스크를 잠시 벗었을 때 드러난 얼굴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었다. 그리고 해당 골프장은 권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있는 통일교의 소유였다.
▷한 인터넷 언론은 12일 ‘복면 골프’ 동영상을 공개하고 권 의원이 야외는 물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며 비밀 접대 라운딩 의혹을 제기했다. 동반자 명단에 ‘권성동’이란 이름이 없었다고도 했다. 논란이 되자 권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운) 날씨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했고, 식사비 포함 35만 원을 직접 결제했다”고 해명했다. 몰래 골프를 치거나 접대를 받은 건 아니란 취지였다.
▷권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통일교로부터 1억 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통일교 전직 간부는 특검에서 “권 의원이 가평 천정궁을 두 차례 찾아 한학자 총재에게 큰절을 하고 금품이 담긴 쇼핑백 2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간부가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건진법사 전성배 씨로부터 “윤심(尹心)은 변함없이 권(성동)”이란 말을 듣고 교인들을 단체 입당시켜 권 의원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우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당시 권 의원은 출마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임에도 권 의원이 통일교 소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걸 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부글부글하는 분위기다. 김건희 특검팀은 ‘복면 골프’ 사흘 후 “통일교인 입당 의혹 규명을 위해 당원 명부가 필요하다”며 국민의힘 당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15시간 대치 끝에 간신히 압수수색은 막았지만 당내에선 “권 의원을 넘어 당 전체가 타깃이 됐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오랜 친구’라고 불렀던 권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원조 윤핵관’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윤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을 때 비서실장을 맡았고, 이후에는 원내대표가 됐다. 이준석 전 대표를 대표직에서 내려오도록 하는 데도 ‘기여’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체리 따봉’ 문자도 받았다. 지인의 아들을 대통령실에 근무하도록 하는 등 인사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비상계엄 이후에도 권력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일까. 권 의원은 지난해 말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욕 먹겠지만 얼굴 두껍게 다녀야 한다”며 단일대오로 버티자고 했다가 당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 자신 때문에 당으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에서 ‘통일교 소유 골프장에서의 복면 골프’로 구설에 오른 걸 보면, 의원총회에서 했던 말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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