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광복 80주년 경축사를 통해 “낡은 냉전적 사고와 대결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북한을 향해 그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과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나아가 전임 정부 때 폐기된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단계적 복원 의지도 밝혔다. 일본에 대해서는 ‘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자 중요한 동반자’라며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 경축사는 북한에는 인내심을, 일본에는 자신감을 토대로 새 정부 대외정책 노선을 펴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한에는 거듭 대화를 손짓하면서 일본에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대북, 대일 정책은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게 출렁거렸던 게 사실이고, 한쪽과는 거리를 좁히면서 다른 쪽과는 멀어지는 일이 많았다. 이런 두 관계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균형감 있게 대외정책을 이끌겠다는 이재명식 실용주의 선언인 셈이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그간 남북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던 키워드, 즉 북한 체제 존중과 흡수통일 배제 원칙을 되살렸다. 공공연히 ‘자유의 북진’을 내세우며 사실상 흡수통일론을 주장한 전임 정부와의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전단 살포 중단, 확성기 철거 같은 유화 조치의 지속적 추진은 물론 9·19 군사합의의 복원까지 천명했다. 당장은 “허망한 개꿈”이라 조롱받더라도 북측이 화답할 때까지 인내하겠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에 대해선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원칙적 대응을 하면서도 양국 간 미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투 트랙’ 기조를 거듭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내주 말 첫 미국 방문 길에 일본을 먼저 들르는 외교 행보를 통해 작은 파격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날 패전일 추도사를 통해 13년 만에 처음으로 ‘반성’을 언급하며 나름의 호응을 보여 줬다. 이런 작은 신뢰들이 하나씩 쌓여 갈 때 한일 간 상생 협력의 기반도 커질 것이다.
사실 대북, 대일 균형 잡기는 ‘트럼프 2기 시대’의 국제질서 격변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지혜일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직거래에 대비하려면 북한과의 대화 물꼬 트기가, 동맹에 가혹한 트럼프식 셈법에는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전 정부, 전 정부가 그랬듯 한쪽에로의 과잉과 편향으로 흐르기 쉬운 게 대외 정책이다. 그 쏠림의 근저에는 여론 편승, 특히 국론 분열 속에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정파적 계산이 있다.
모든 정부 정책의 힘은 국민통합에서 나온다. 하물며 대외 정책이 다르겠는가. 과거의 실패도 친북 친일 논란이 낳은 분열과 갈등, 그에 따른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의 결과였다. 정책의 성공, 나아가 정부의 성공은 진정한 정치의 복원, 즉 통합의 정치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이 대통령도 경축사에서 “이제 우리 안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며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자고 역설했다. 그 시작이 이 대통령 자신부터여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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