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비롯한 경제6단체 대표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조법 개정안 수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전면 철회를 여권에 요청해온 재계가 한발 물러나 대안을 제시했다. 핵심 쟁점의 하나인 노조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제한의 입법을 수용할 테니, 원청에 대한 하청 근로자의 교섭권 인정 등 산업현장에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몇몇 조항만이라도 제외해 달라는 것이다. 이번 주 국회 본회의에서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최악만은 막아 달라’며 내놓은 마지막 호소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6개 경제단체는 18일 국회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업체 사용자는 하청 근로자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지 말고 현행 조항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이 담겼다. 또 노동쟁의 대상을 기존 ‘근로조건의 결정’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으로 확대한 부분에선 ‘사업 경영상 결정’ 부분은 제외해 달라고 했다. 기업이 대응할 최소 1년의 유예기간도 필요하다고 했다.
재계가 사용자 범위와 관련해 현행법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한 건 ‘실질적 지배력’이란 모호한 문구 때문에 산업현장에 극심한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실질적 지배관계’ 여부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교섭부터 요구하고 보자’는 하청 근로자와, 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원청 사이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교섭을 거부하다가 법원에서 정당한 교섭 대상이란 판결을 받는 경영자는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수백∼수천 개의 하청업체가 있는 대기업들은 1년 내내 노사교섭을 해야 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불합리한 노사관계에 대한 불만 때문에 외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기피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쟁의 대상에 ‘사업 경영상 결정’ 문구가 포함된다면 해외 공장 건설, 투자 확대 등 경영 판단에 대해 기업은 사실상 노조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 조선업 부활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이 막대한 대미 투자를 해야 하는 ‘마스가 프로젝트’, 한시가 급한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등에 대한 의사 결정마저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완강히 반대해온 노조원의 손해배상 책임제한을 재계는 이번에 수용했다. 불법 쟁의에 대응하는 사실상 기업의 유일한 방어권마저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양보를 해서라도 산업 생태계의 붕괴는 막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이제라도 민주당은 재계의 간곡한 호소를 경청해 법안을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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