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문제집, 강의 자료 등을 불법 공유하는 ‘유빈아카이브’ 운영자가 검거됐다는 뉴스가 나온 이달 12일에도 인터넷 입시자료 카페 게시판에는 여전히 PDF 자료가 올라와 있었다. 자료 공유가 합법인지, 계속 공유해도 되는지 걱정하는 질문도 이어졌다.
유빈아카이브는 2023년 7월부터 대형 입시학원 수능 교재, 유료 동영상 강의, 모의고사 자료 등 1만6000여 건을 불법으로 복제하고 공유해 온 텔레그램방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범죄수사대 단속에 적발되면서 폐쇄됐다.
불법 공유방이 개설된 지 2년 만에 33만 명이나 모인 배경에는 과도한 사교육비, 저작권에 대한 낮은 인식 등 입시와 교육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른바 ‘피뎁방’(PDF 파일 공유방)이라고 불리는 자료 공유방은 과거에도 누누스터디, 핑프방 등 이름만 달랐을 뿐, 없애면 다시 생겨났다. 유빈아카이브는 폐쇄됐지만 곧 유사한 공유방이 개설될 것으로 예상하는 수험생이 적잖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 기준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은 29조 원. “학원비도 비싼데 부모님께 모의고사 세트까지 사달라 할 면목이 없다” “지방 학생들이 넘을 수 없는 강의 자료 수준 차이를 유빈아카이브 접속해서 알았다”는 학생들의 항변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불법 공유에 따른 책임을 면할 순 없다. ‘사교육으로 인한 교육 격차를 교재 공유로 줄이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 유빈아카이브는 문체부 조사에서 ‘소수방’이라고 부르는 유료 공유방을 따로 만들어 수익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운영자는 뒤로 수익을 챙기면서 학생들을 저작권법 위반 범죄에 내몬 셈이다.
무너진 저작권 보호 의식은 대학가라고 예외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를 기점으로 비대면 수업이 일반화되면서 수업 교재를 PDF 파일 등으로 불법 공유하는 문화가 대학가에 퍼졌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한 학기 사용하고 안 쓸 두꺼운 전공책을 사는 비용이 부담되고, 들고 다니기 번거롭다는 핑계를 댄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지난해 1학기 대학생 및 대학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학 교재 중 불법 복제본이 저작권법을 위반한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77.9%에 이른다.
불법 공유방을 폐쇄하고 개설자를 엄벌하는 것 못잖게 ‘불법 공유는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저작권보호원의 2024년 조사 결과 ‘저작권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이 전체의 62.6%에 달한다.
저작권 침해 수준은 사회 전체가 콘텐츠와 교육 연구의 가치를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 보여준다. 해외에서는 대학 입학 시 연구 윤리 교육 일부로 표절과 저작권에 대한 가이드를 의무적으로 한다. 우리도 학생들에게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한 이가 오히려 손해 본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애써 만든 콘텐츠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도용당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가르쳐야 또 다른 유빈아카이브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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