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으로 건립된 것을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이라고 했으나
현행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해
상식적 역사관 회복을 위한 진전이었다
송평인 칼럼니스트
제헌 헌법의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쓰여 있다. 이승만이 건드리기 전까지 전문 안(案)들은 모두 ‘삼일정신을 계승해 (망했던)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식의 상식적인 문장으로 돼 있었다. 그것을 이승만이 막판에 바꿔버렸다. 임시정부를 만들고 이어 (정식) 정부를 만들었다고 하면 될 것을 무슨 아파트 재건축하듯 ‘건립하고 재건한다’는 해괴한 논리로 대체한 것이다.
이승만의 자의식(自意識)은 이미 1919년부터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성 정부의 집정관 총재였고 상해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두 직위 다 영어로는 ‘president’로 표기했다. 다만 그는 한성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고 상해 임정은 한성 정부를 계승하는 한에서 의미가 있다고 봤다는 점에서 근래의 1919년 건국론자와는 다르다.
제헌 국회는 단기를 사용했지만 이승만만 1919년을 원년으로 하는 대한민국 연호를 고집했다. 그러나 억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도 1949년 광복절 기념사부터는 ‘민국 건설 제1회 기념일’로 칭하기 시작했고 195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 10주년 기념식’까지 치렀다. 그 후의 대통령들도 문재인을 빼고는 김대중 노무현까지도 다 1948년 건국을 말했다. 억지를 떠받치는 인위적인 노력은 시간이 흐르면 흩어지게 돼 있다.
제헌 헌법에 이승만이 끼워넣은 이상한 문장은 이승만의 하야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다 1987년 현행 헌법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계승하고”라는 문장이 새로 생겼다. ‘대한민국’과 ‘임시정부’는 띄어써도 상관없지만 헌법은 굳이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붙여 썼다. 제헌 헌법과는 달리 3·1운동으로 건립된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글을 똑바로 읽는 훈련부터 해야 할 것이다.
정 대표가 국회 법사위원장을 할 때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앞에 앉혀 놓고 헌법에도 틀린 게 있다며 ‘국민투표에 붙여’는 ‘국민투표에 부쳐’로 써야 한다는 훈계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한글맞춤법은 1980년과 1989년에 크게 바뀌었다. ‘부치다’처럼 ‘붙이다’와 어원이 같지만 본래 의미에서 멀어진 말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원칙이 1989년부터 적용됐다. 1989년 이전까지의 맞춤법에는 ‘국민투표에 붙여’가 맞는 것이었다. 역사를 모르면 엉터리 소리를 하게 돼 있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난립했다. 그중 주된 것이 이승만 중심의 한성 정부(실제 회합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전단지상의 정부라는 비판도 있다), 이동휘 문창범 중심의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였다. 당시 한국인이 활동하던 중심지는 한성과 연해주였다. 자체 기반이 약한 상해 임정은 한성 정부와 대한국민의회의 통합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이동휘를 내세웠다.
통합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신채호 이회영 등 무정부주의자들은 상해 임정을 초기부터 부정했다. 대한국민의회 측은 레닌의 자금까지 끌여들여 상해 임정을 소비에트화하려다 실패하자 떠나버렸다. 이승만은 상해 임정에서 탄핵됐다. 다만 그는 미국에서 자칭 타칭 구미위원장으로 남아 있었으니 결별한 건 아니었다.
임정의 마지막 주석 김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로 계승된 임시정부 법통의 담지자는 김구 등 몇몇을 빼고 이승만을 비롯해 절반을 훨씬 넘는 임정요인들이 된다. 정 대표는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강조할 때 자가당착에 빠진다. 헌법 전문의 한글을 제대로 읽으면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란범이 아니라 임시정부 법통의 담지자들을 배제하고 법통에서 벗어나거나 법통을 공격한 자들을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내란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대표처럼 옹졸해지지 말아야 한다. 법통은 경직된 표현이므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자연스러운 사실은 이렇다. 1919년 3·1운동의 정신으로 건립된 것은 다양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들이고, 그중 해방 때까지 이어진 것은 상해 임정뿐이며, 상해 임정을 법통으로는 아니더라도 봉대(奉戴)의 정신으로 계승해 수립한 것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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