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에게 찾아온 고양이[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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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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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2년 전, 비가 오는 날이었다. 새끼 고양이가 집 베란다 밖에서 빗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봤다. 집 근처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살던 길고양이였다. 빗물을 마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물과 사료를 줬다. 그날 이후, 고양이는 매일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지켜보는 사이가 됐다. 새벽에 출근하려고 하면 창밖에서 고양이가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집을 나서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퇴근해 집에 있으면 언제 들어왔는지 창밖에 앉아 분주히 움직이는 나를 조용히 지켜봤다. 처음엔 ‘고양이가 말을 할 줄 아는 게 아닐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뒤, 고양이를 보면 약간 슬프기도 했다. 이제는 그저 서로 바라보고만 있어도 말이 통하는 친구처럼 편하고 좋다.

양자역학을 얘기할 때면 꼭 등장하는 고양이가 있다.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1935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 속의 확률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고양이가 등장하는 사고실험을 제시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물리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가 됐다. 자신의 양자역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양이를 예로 들었을 뿐인데, 마치 양자역학과 고양이가 본질적으로 연관이 있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더 나아가 슈뢰딩거가 고양이를 키우고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이미지까지 생겼다. 하지만 그가 고양이를 키웠다는 증거는 없다.

사실 양자역학의 역사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보다 더 주목받는 그의 업적은 1929년에 발표된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역학 세계 속 입자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공식이다. ‘1+1=2’로 결정되는 현실 세계와 다르게, 양자역학 세계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확률적 상태로 표현해야 한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양자의 운동을 야구공의 운동처럼 설명할 수 없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확률을 이용한 파동함수로 물리적 상태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 확률 이론에 의해 미지의 양자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공로로 1933년 슈뢰딩거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내게도 고양이와의 인연이 있다. 딸아이가 외국 출장을 가면서 두 달 동안 고양이 세 마리를 임시 보호한 적이 있다. 그때 고양이의 매력에 빠졌다. 개성이 뚜렷한 세 고양이 틈에서 산다는 것은 분명 현실의 세계와는 달랐다. 긴장감과 편안함, 두 가지 성질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라고 해야 할까? 양자역학에 빗대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이 공존하는 세계 같았다.

그 시절, 학교에 가려고 나서면 문 앞까지 따라오는 세 고양이를 달래려고 ‘츄르’를 줬다. 퇴근해서 다시 만나면 기념으로 또 츄르를 줬다. 츄르는 고양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나중에 딸아이가 고양이를 찾아갈 때, 살이 찐 녀석들을 보고 “아빠, 뭘 잘 먹였기에 애들이 살이 쪘지?” 하며 놀라워했다. 난 그때까지 츄르가 고양이에게 아주 가끔 주는 간식인 줄 모르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사료를 잘 안 먹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세 마리의 고양이와 살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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