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윤완준]‘수박’이 될 용기가 필요한 정청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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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논설위원
윤완준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국회의장 후보 경선이다. 당원들은 ‘명심’이 추미애 의원에게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은 초강성인 추 의원을 비토하고 우원식 의원을 후보로 선출했다. 당원들은 발칵 뒤집혔다. 탈당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2만 명 넘게 탈당했다고 밝힐 정도였다. 깜짝 놀란 그는 당원 권한을 2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당 대표가 강성 당원들을 두려워할 수준이 된 것이다.

입법 독주 정당화의 논리, 당원

그전까지만 해도 ‘강성 당원=개딸(이재명 팬덤)’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 대표가 20대 대선 후보로 선출된 2021년 민주당이 신고한 당원 수는 약 485만 명이다. 1년 전에 비해 80만 명 늘었다. 그해 당비를 납부한 당원 수는 약 130만 명으로 2020년에 비해 40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 대표가 대선 주자로 부상한 뒤 당원이 급증했으니 새로 들어온 당원 상당수를 친명 팬덤이라 생각할 법했다.

하지만 집단 탈당 사태는 강성 당원들이 이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 단순한 ‘친명’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당시 한 친명 의원은 권리당원들의 실체를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적대감’으로 설명했다. 그 도구로 이재명을 선택한 것이기에 ‘싸우는 이재명’이 아니면 ‘이재명의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협치하라는 주장은 현실을 정말 모르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됐다. 협치를 강조하면 친명계라도 비명계 의원들을 조리돌림 할 때 쓰던 멸칭인 ‘수박’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강성 당원들에게 ‘수박’은 단지 비명이어서가 아니라 극렬히 싸우지 않는 의원들에 대한 경멸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민주당 대표 경선 때 정청래 대표를 겨냥한 ‘수박’ 공세가 먹히지 않은 이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과거 이 대통령을 비판한 정 대표의 발언 등이 인터넷에 나돌았지만 대세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찐명’ 박찬대 의원과의 격차를 벌린 건 협치 여부였다. 정 대표는 경선 초기부터 협치보다 내란 척결이 먼저라고 했고, 야당과 협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던 박 의원은 강선우 여성가족부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했다가 ‘수박’으로 몰렸다.

강성 당원 요구가 국익과 다르다면

정 대표는 그 강성 당원들에게서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찾으려는 듯하다.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제1야당과 눈도 안 마주친다. 원로들이 당원만 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지만 연일 국민의힘 해산을 외친다. 친명과의 거리감 때문에 당내 의원들 지지 기반이 약한 점을 의식한 듯 강성 당원들과 직접 소통하며 ‘정청래 팬덤’을 확대하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 대표는 국회에 불려온 증인에게 호통 치고 국민의힘 의원들과 볼썽사나운 설전을 벌이던 과거의 정청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표 때처럼 야당 대표가 아니라 국정의 책임을 대통령과 나눠 진 집권 여당의 대표다. 야당이 아무리 형편없다 해도 없는 존재 취급하면 정 대표가 그토록 비판해 온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야당 무시와 다를 게 없다. 당장 여당이 약속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만 해도 국회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국민의힘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렵다.

이제 정 대표는 강성 당원들에게만 부응하는 쉬운 길을 갈지, 강성 당원들의 요구가 국익과 다르다면 설득하는 어려운 길을 갈지 갈림길에 놓였다. 집권 여당 대표의 막중한 책임을 인식한다면 후자가 ‘수박’ 비난을 들어가면서라도 가야 할 길이다. 정 대표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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