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버섯 2170종 중 식용은 493종
표고버섯처럼 생긴 ‘흙무당버섯’
구토-설사 증상에 혼수상태 일으켜
환각 버섯에 있는 ‘사일로사이빈’… 세로토닌 자극해 치료제로 쓰기도
올해 6월 ‘붉은사슴뿔버섯이 면역력을 높여 준다’는 요리법이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소개됐습니다. 새빨간 뿔 모양이 특징인 붉은사슴뿔버섯은 아주 조금만 먹어도 치명적인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독버섯입니다. 해당 블로그 글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작성된 것으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정보가 금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퍼졌습니다. ● 전체 버섯 중 21%만 식용 버섯
생성형 AI 챗GPT에 “붉은사슴뿔버섯을 요리해 먹을 수 있냐”고 물으면 “간단한 볶음 요리로 만들어 먹거나 차로 달여 마시면 좋다”고 답변한 화면이 캡처되어 인터넷에 돌고 있습니다.
붉은사슴뿔버섯은 조금만 먹어도 세포와 장기를 망가뜨릴 정도로 강한 독을 품은 버섯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하지만 이는 거짓 정보입니다. 붉은사슴뿔버섯에는 트라이코테센 계열의 독성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세포와 장기를 망가뜨릴 수 있는 물질이죠. 붉은사슴뿔버섯을 먹으면 30분 안에 배가 아프고, 서서히 몸이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석순자 단국대 미생물학과 초빙교수는 “손톱만큼만 먹어도 몸에 독이 퍼질 수 있는 버섯”이라며 “절대 요리해 먹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버섯은 미생물의 일종인 곰팡이입니다. 사람이 먹어도 안전한 식용 버섯과 먹으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독버섯으로 나뉘죠. 한국에서 발견되는 야생 버섯 2170종 가운데 식용 버섯은 493종으로, 전체 버섯의 단 21%만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 식용 버섯입니다. 야생 독버섯은 주로 7∼10월 덥고 습한 산림에서 자랍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중독 증상에 따라 독버섯의 독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대표적인 독으로는 복통과 구토를 유발하고, 간에 문제를 일으키는 아마톡신 독이 있습니다. 설사를 유발하는 자이로미트린 독과 외부의 자극 없이도 시각, 청각 자극을 느끼도록 환각을 만드는 사일로사이빈 독, 장에서 혈관으로 침투해 심정지를 일으키는 무스카린 독도 있죠.
● 모양과 색으로는 구분 어려운 독버섯
올해 7월 버섯생태학자 박상영 씨(충북대 산림학과 박사과정)와 함께 전북 정읍시 내장산 수목원, 내장산 국립공원, 전남 장성군 임암산에서 버섯 동정(同定·Biological Identification) 작업을 했습니다. ‘동정’은 생물을 관찰해 그 종류를 알아내는 일입니다.
흙무당버섯은 표고버섯과 비슷해 보이지만 독버섯이다. 어린이과학동아 제공가장 처음 발견한 버섯은 갓이 고동색이고 대가 흰색이었습니다. 표고버섯 종류로 추측했지만, 사실 이 버섯은 독버섯인 흙무당버섯이었습니다. 한국 전역에서 발견되는 흙무당버섯은 활엽수림에서 자라는데, 먹으면 구토나 설사로 시작해 혼수상태까지 일으킬 수 있는 독버섯입니다. 갓이 황갈색이나 고동색으로, 갓의 모양이 둥글 때는 표고버섯과 비슷하게 생겨 착각하기 쉽습니다.
‘독버섯의 생김새는 화려하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식용 버섯인 달걀버섯은 보통 식용 버섯과 달리 갓이 새빨간 색입니다. 치명적인 독이 든 개나리광대버섯은 겉모습이 화려하지 않고 상아색을 띱니다. 박 씨는 “모양과 색만으로 독버섯을 구분하기는 어렵다”며 “버섯의 모양을 살피는 것뿐 아니라 버섯의 생물학적 유전 물질인 DNA를 분석해야만 해당 버섯의 종류와 독성 유무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독버섯에도 쓰임이 있다?
독버섯이 지닌 독은 사람에게 치명적이지만 치료제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환각 버섯에서 발견되는 사일로사이빈입니다.
가시환각버섯에 있는 물질 사일로사이빈은 우울증 치료제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우리 몸에서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나옵니다. 세로토닌이 나오면 우리 몸은 행복해지고, 안정감을 느끼죠. 사일로사이빈은 세로토닌이 더 나오도록 자극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충격적인 사건 이후 심한 고통을 느끼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 치료제를 만드는 데 사일로사이빈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야생 독버섯은 숲 생태계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흙무당버섯, 우산광대버섯 같은 독버섯은 ‘뿌리곰팡이’입니다. 식물은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그 과정에서 영양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버섯은 광합성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뿌리곰팡이는 식물 뿌리의 주변이나 안쪽으로 뻗어가 특수한 구조를 만들어 자신과 식물을 연결합니다. 식물의 뿌리를 통해 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든 당분 등을 받아먹는 대신 땅속에서 인, 질소 같은 무기 영양분을 흡수해 식물에 보내줍니다.
독버섯 중에는 숲속에 낙엽과 유기물이 쌓이지 않도록 청소하는 ‘부생균(腐生菌·사체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는 균)’도 있습니다.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는 노란개암버섯, 흰갈대버섯 같은 독버섯이 부생균에 속합니다. 부생균은 죽은 나무에 붙어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살아갑니다. 유기물이 썩어가며 숲에 쌓이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지요. 부생균은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바꿔 숲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