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칼럼]저속기어 넣고 액셀 세게 밟으면 경제에 속도 붙겠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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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기업·갈라파고스 입법 강행하는 與
사그라드는 ‘실용적 시장주의’ 기대감
기업들 투자·고용 의지 약화 불가피
‘진짜 성장’ 위한 정책 맞는지 재고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독침으로 널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을 텐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있겠니.” 강물을 건너게 도와달라고 개구리에게 부탁하던 전갈은 겁이 나 등에 태워주길 주저하는 개구리를 이렇게 안심시켰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전갈은 개구리의 옆구리를 찔렀다. 독이 퍼져 죽어가면서 “도대체 왜?”라고 묻는 개구리에게 전갈이 하는 말. “어쩔 수가 없어. 이게 내 본성이라고….”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과 ‘더 센 상법’을 단독 처리하는 걸 지켜본 한 중견기업 오너는 ‘전갈과 개구리’ 우화가 떠올랐다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황당한 비상계엄에 분노해 이재명 정부의 출범을 순리로 받아들였고, ‘실용적 시장주의’ 메시지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반(反)기업 입법을 보면서 “역시나” 하고 희망을 접었다는 거다.

노란봉투법과 2차 개정 상법, 앞서 통과된 1차 개정 상법만큼 갓 출범한 정부, 기세등등한 거대여당의 입법에 맞서 재계가 끝까지 반발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기업 경영에 실질적 충격이 예상되거나, 경영권을 위태롭게 할 사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이들 법안은 하나같이 선진국에서 선례를 찾기 힘든, 대단히 한국적인 갈라파고스 입법들이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에서 사용자 정의를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하는 부분만은 빼달라고 마지막까지 호소했다. ‘실질적’이란 말에 아무런 설명도 붙지 않아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단체협상을 요구하고, 파업을 벌일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선진국 법원이 사용자 범위를 넓게 인정한 관련 판례가 있긴 하지만, 법으로 이걸 못 박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처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시행된 1차 개정 상법은 기업 이사들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전체 주주’로 확대했다. 미국의 일부 주법에만 있는 조항이다. 2차 개정 상법으로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의무화된 집단투표제는 주주에게 복수의 표를 주고, 이사 선정 때 표를 몰아줄 수 있게 한 법이다. 1950년대에 일본이 도입했다가 주주 간 파벌 싸움 등 부작용이 커 1974년 폐지하는 등 주요 7개국(G7) 중에선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가 없는 제도다.

비슷한 법안들이 발의됐다가 불발됐던 문재인 정부와 다른 점이라면 지금 이재명 정부는 압도적 거대여당의 힘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법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탄핵의 늪에서 여전히 허우적대는 야당은 전혀 막아설 힘이 없다. 문제는 이런 좌파적 법과 제도가 우리 경제 전반의 속도를 거의 확실하게 떨어뜨릴 것이란 점이다.

노란봉투법 시행이 6개월 넘게 남았는데, 벌써 여러 대기업 하청업체 노조들은 자기 회사 대표를 건너뛴 채 “진짜 사장 나와라”며 원청 기업에 요구하고, 불법 하청을 줬다며 고소장을 내기 시작했다. 이 법이 ‘대화 촉진법’이자 ‘상생의 법’, ‘노동과 함께하는 진짜 성장법’이라는 민노총 위원장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의 주장과 전혀 상반된 움직임이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이 대통령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주가를 폭락시켜야” 같은 강성 발언을 쏟아낸 뒤엔 관련 기업의 사업장들이 올스톱됐다. 안전사고는 확실하게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건설업 현장의 위축은 13조2000억 원짜리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경기 진작 효과를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꽤 큰 개미”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5,000’을 금세라도 터치할 것 같던 코스피는 내년도 세제 개편안에 담긴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강화 등에 대한 실망감으로 3,100∼3,200 박스권에 갇혀 버렸다.

요즘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정책과 입법의 대다수는 ‘잠재성장률 3% 회복’이란 국정목표와 상충한다. 지난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향후 1년간 경기전망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5%만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낙관론은 대통령 취임 직후인 6월의 52%에서 17%포인트 뚝 떨어진 반면에 비관론은 25%에서 39%로 14%포인트 증가했다.

경제의 ‘기어’를 저속으로 내리는 정책을 골라 쓰면서, ‘액셀’을 강하게 밟아봐야 소리만 요란할 뿐 성장의 속도가 높아지기 어렵다는 걸 실감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 대선의 강을 건너야 할 때 잠시 유권자와 기업들을 안심시키려고 친기업·성장을 외쳤을 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면 뭐라 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고속성장은 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못 알아서 이러는 거라면 요즘 ‘현타’가 왔다는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노란봉투법#2차 개정 상법#실용적 시장주의#정부#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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