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하게 응징당한 박찬대-김문수
‘열심당원’ 수십만이 선거 좌지우지
당 주인은 당원? 납세자가 더 기여
개딸-아스팔트 영향력 낮춰야 개혁
김승련 논설실장
올 8월 여야가 정청래와 장동혁을 새 당 대표로 선출하는 과정에서 눈에 띈 것은 공격적 성향의 당원들이었다.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사회 분열을 걱정했는데, 더 나쁜 양상으로 번지는 듯하다. 상식과 순리에 기반한 발언일지라도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가차없는 응징이 진행됐다.
대표적 장면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후보는 “(국민의힘과의) 협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개딸 당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내년 지방선거 때 전한길과 한동훈 중 누구를 공천하겠느냐”는 질문에 ‘한동훈’이라고 답했다가 뭉텅이 표가 날아갔다. 측근의 말로는 “그날 내게 온 항의 문자만 500개”라고 했다. 양쪽 모두 지도자라면 응당 했어야 할 말이었다.
양대 정당에서는 당비를 1년에 3∼6개월 동안 월 1000원을 납부하면 권리당원(민주당)과 책임당원(국민의힘) 지위와 투표권이 주어진다. 8월 선거 때 실제 투표한 이들은 각각 63만 명과 35만 명이었다. 두 당의 전체 당원은 각각 512만 명, 444만 명으로, 당원의 10% 안팎인 규모다. 전한길 씨가 자신의 유튜브 가입자 10만 명을 당원으로 가입시켜 ‘당을 접수하겠다’고 한 말이 실행 여부와 관계 없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두 정당의 실력자들은 강성 당원의 표심 영향력을 야금야금 더 키워주고 있다. 그 결과 이들 ‘열심당원’ 눈 밖에 나선 당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민주당에서 전체 유효득표 가운데 이들 비중이 3년 동안 40%에서 55%로 커졌다. 국민의힘에선 이명박-박근혜 경선 때 대략 30% 선이던 것이 이번에 80%로 높아졌다. 야당과 악수도 안 하겠다는 정청래 대표,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장동혁 대표는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다.
당원 정치의 시대가 자연스럽게 온 듯하지만,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 팬덤 정치의 힘을 간파한 정치인들이 ‘당원=당의 주인’이라는 논리를 반복 주입하고, 당권을 쥔 쪽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당헌당규를 꾸준히 고쳐왔다.
국민의힘에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꺼낸 ‘신천지 신도 10만 명 입당설’이나, 특검 수사 때 나왔다고 보도된 ‘3개월 당비를 낸 통일교도 1만 명 입당’ 관련 문자는 뼈아프다. 사실이라면 기획성 표 몰아주기 행위다. 놀랍게도 국민의힘 내부에서 개탄하거나 사실 규명을 통해 재발을 막자는 공개 주장이 안 들렸다. 문제의식이 없다기보다는두려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의 주인이 당원이란 대전제는 진실인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함정이 있다. 이들이 낸 당비의 총합은 거대 정당에선 연 수백억 원에 이르지만, 정부로부터 받는 국고보조금은 훨씬 더 많다. 경상보조금, 선거 때 받는 선거보조금에 15% 이상 득표했을 때 받는 선거비용 보전금까지 있다. 당 운영에 돈을 댄 것은 당원이 아니라 전체 납세자라는 게 더 정확하다. 정당이 국회를 지배하면서 입법과 예산 분배를 통해 내 삶을 좌우한다. 바꿔 말하면 당비 1000원을 내는 수십만 명이 수천만 유권자의 삶에 개입하고 있다.
정청래, 장동혁의 정치는 앞으로도 호전적일까. 사람마다 짐작이 다르겠지만, 정 대표는 여전히 공격적 정치를 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 대표가 내년 여름 당 대표직에 다시 도전할 것이고, 큰 뒤탈만 없다면 4년 뒤 대선 후보 도전에 나설 공산이 크다. 그러자면 팬덤이 필요하고, 성공적으로 대표에 이른 기억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인은 팬덤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끌려다니는 측면은 중히 여기지 않을 듯하다.
장 대표 역시 강성 당원들의 지지라는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고, 그동안 해 놓은 말빚 때문에 운신의 폭은 좁다. 하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 참패 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급전직하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선을 위해선 아스팔트 우파에 올라탔지만, 앞으론 민심에 기댄 정치와의 사이에서 고민이 커질 것이다. 한 달에 5도씩 몸을 틀면서 변신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지금 정치권에선 소리 없는 지각 변동이 진행 중이다. ‘우리가 주인’이라는 당원들이 힘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은 정청래, 장동혁이 아니더라도 제2의 정청래, 제3의 장동혁을 찾을 수 있다. 서둘러 흐름을 차단해야 한다. ‘월 1000원’ 표심의 비중을 낮추는 정치운동이 생기길 바란다. 당원이건 아니건 손쉽게 정당선거에 투표할 방법을 찾는다면 미국식 프라이머리에 가깝게 갈 수 있다. 대선 후보 경선, 당 대표 선거에 민주당이건 국민의힘이건 500만 명이 투표할 수 있다면, 민주당의 63만, 국민의힘의 35만 명이 과다대표되는 걸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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