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혈당 수치가 식습관 바꿔”… 데이터는 미래의 처방전[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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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바꾸는 건강관리
혈당측정기로 살핀 혈당 수치
간식 섭취 등 스트레스 줬지만… 식생활 개선 이끌며 긍정적 역할
데이터, 뇌 질환 치료 길 열어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아는 것은 힘인가, 스트레스인가?” 많은 사람에게 질병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길 원하느냐고 물으면 ‘치료를 할 수 없다면 알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필자는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 자신은 어떤 경우에도 알고 싶다”고 답해 왔다.》

최근 연속혈당측정기(CGM)를 사용해 봤다. 당뇨병을 의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굳이 혈당을 측정할 이유는 없었지만, 과학자의 호기심으로 CGM을 활용해 혈당을 측정해 봤다. 처음에는 의외로 스트레스가 쌓였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는지를 바로 본다는 것 자체가 생활 속의 즐거움이었던 간식 먹기를 부담스럽게 했다. 마치 계속 놀면서도 시험을 안 봐 실력이 떨어지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지속적으로 시험을 치르게 된 느낌이랄까.

그러다 3일째 되던 날, 착용 부위를 잘못 건드려서 CGM 센서가 망가졌다. 더 이상 당수치 측정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내심 기뻤다. ‘아, 이제 시험에서 벗어나는구나.’ 3일 정도 측정했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미 생활 습관과 당수치의 관계를 꽤 알게 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측정을 멈추니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을 먹는 데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됐다. 정말 신기하게도 혈당 수치 등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없고 너무 좋았다.

그런데 또다시 며칠이 지나니,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당수치가 어떻게 변할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수치가 올라가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내 스트레스에 따른 수치가 얼마나 될까?’ 먹고, 자는 것 등에 따른 여러 가지 영향을 이론적으로 안다고 해도 직접 보면서 수치를 보고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한 번 경험한 후에는 계속해서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CGM을 구입해 착용하게 됐다.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필자는 빵과 디저트류를 좋아한다. 탄수화물과 설탕 섭취를 줄이는 게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스트레스가 많고 바쁜 일정을 보내는 와중에 좋아하는 음식까지 제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간 혈당 수치 등으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면서 그전에는 상상하기 힘들던 식사 조절이 비교적 쉬웠다. 막연하게 ‘몸에 안 좋으니 먹지 말자’라고 생각할 때는 먼 미래를 위해 당장의 즐거움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바로 성적표를 받아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전문가들에게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자주 묻는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치매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이 대표적이다. 우리의 어떤 행동과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바로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나온 데이터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에게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여러 가지 실험에서 나온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유추할 뿐, 모든 상황에 대한 자세한 결과를 알 수는 없었다. 당수치는 지난 수십 년간 쉽게 피검사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몸의 상태와 수치를 직접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당수치와 달리 뇌의 활동에 관한 정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느 부위의 활동이 조금 변한다 정도의 제한적인 정보도 비교적 최근에야 실험실에서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추상적이고 완전하지 않은 정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의 뇌에 대한 지식은 아직도 ‘잠을 자는 게 좋다. 운동을 하는 게 좋다’ 수준의 상식선에 머물러 있다. 필자는 지난 15년간 뇌의 활동을 시각화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해 왔다. 그 결과 이제는 환자의 뇌 건강을 시각화하고, 자세한 네트워크를 볼 수 있는 기술을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시작 단계에 와 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여러 환자의 뇌 상태를 증상에 따라 관찰해 나가는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실험이 가능해지면서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알지 못했던 것까지도 빠르게 발견해 나갈 수 있게 됐다. ‘환자가 어느 부분이 아플 땐 이런 뇌 활동이 일어난다’라는 걸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정확한 진단은 물론이고 치료까지 가능하게 한다.

아는 것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스트레스 증가를 가져올 수 있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역경을 이겨 나가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큰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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