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1년 개통 예정이던 서울∼양평고속도로는 2017년 첫 계획 단계부터 2021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칠 때까지 줄곧 경기 양평군 양서면이 종점이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인근 양평 두물머리의 교통난을 해소하려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2년 차에 느닷없이 양평군 강상면을 종점으로 한 대안이 공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강상면 종점에서 500m 떨어진 거리에 김건희 여사와 모친, 형제자매가 4만 ㎡의 땅을 소유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국비 1조9000억 원이 투입되는 고속도로의 구간 변경에 대해 정부는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었다.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팀은 당시 국토교통부 도로정책팀장을 맡았던 김모 서기관을 ‘1차 키맨’으로 꼽고 있다. 김 서기관은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22년 3월 민간 설계용역업체 두 곳을 만나 종점을 강상면으로 변경하면 편의를 봐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특검이 파악한 인물이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김 서기관의 집에서 수백만 원 상당의 돈다발이 발견된 데 이어 용역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까지 포착됐다고 한다.
▷김 서기관의 요청이 있고 일주일쯤 뒤 용역업체들은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설계도면을 만들었다. 통상 노선을 변경해 설계도면까지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현장 실사도 없이 졸속으로 종점 변경 설계부터 한 것으로 의심된다. 이어 업체들은 그해 11월 강상면 종점안에 대한 타당성 조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국토부 공무원들이 ‘윗선’의 지시에 따라 급하게 종점 변경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게다가 강상면 종점안이 국토부가 주재한 회의에서 공식 문건에 등장해 처음 논의된 건 공교롭게도 2022년 5월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의 취임날이다. 원 전 장관 측은 “당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회의 내용을 보고받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그의 취임 시점과 맞물려 종점 변경 작업이 본격화했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1년여 뒤 김 여사 일가 특혜 논란이 일자 원 전 장관은 “임기 끝까지 의혹에 시달리는 것보다 제가 책임지고 손절하는 게 좋다”며 양평고속도로 사업을 백지화했다.
▷2022년 비공개로 양평고속도로 타당성 조사 착수 보고회가 열렸던 날, 김 여사 모친 최은순 씨의 사무실 컴퓨터에서 강상면 일대 토지 정보를 일일이 검색한 기록도 포착됐다. 비공개 정보가 실시간으로 김 여사 측에 유출된 건 아닌지 특검이 수사로 가릴 일이다. 늦어도 한참 늦어진 수사인 만큼 특검팀은 누구의 지시로 왜 노선을 변경했는지, 김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사실인지 국민적 의구심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 물거품이 돼버린 지역 주민들의 숙원인 양평고속도로 사업도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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