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한국에선 100만 명이 넘는 새 생명이 태어났다. 반면 2020년의 출생아는 27만 명에 그쳤다. 반 세기 만에 큰 폭의 출생아 수 감소가 이뤄진 것이다. 이로 인한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바로 ‘대학’이다. 특히 지역의 중소 사립대학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사회의 높은 교육열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수많은 학생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가운데 1990년 당시 대학의 입학 정원은 한 해 30만 명 수준이었다. 고교 졸업생 중 겨우 30% 정도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대학 입학의 좁은 문은 당연히 불만과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됐다.
정부가 국공립대학을 여럿 세우기에는 재정적으로 부담이 컸다. 1995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 문제를 소위 ‘대학설립 준칙주의’로 돌파했다. 학교 부지 확보와 자산 등의 기본 요건만 갖추면 민간이 쉽게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고등교육에서 수요와 공급이 지배하는 시장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사립대학 설립은 정부의 엄격한 인가를 받아야 했다. 이로 인한 정치적 결탁과 부정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이 정책은 결과적으로 많은 학생에게 대학 입학의 문을 넓혀 줬고, 그로 인한 여론의 지지도 컸다. 자유로운 시장 경쟁으로 대학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각 지역에 100여 곳의 사립대학이 설립됐다. 그로 인해 현재 국내에는 350여 개의 대학이 존재한다. 이들 대학의 입학 정원은 50만 명 남짓이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2020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대학에 진학해도 20년 후에는 대학의 절반이 사라져야 할 상황에 처했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는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다. 이뿐만 아니다. 고학력 및 수도권 선호 현상 심화로 지역의 전문대학 및 4년제 대학의 경우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사립대는 국립대와 달리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특히 지역 사립대학 중 여럿은 학생 수 부족으로 이미 파산의 길을 걷고 있다. 기업에서 학교 재단을 운영한다면 당연히 문을 닫고 철수했을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두가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이 사태는 장기적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취약한 대학들 스스로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사립대학을 철저히 통제하며 획일화시킨 정부의 규제에 있다. 사립대는 법률에 의해 교육부 장관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그 내용은 등록금 책정부터 총학장의 직인 크기까지 너무나 빡빡하고 촘촘하다. 특히 조직과 규모가 큰 사립대의 경우 당국의 지도와 감독 수준이 국립대에 준한다. 물론 교육사업은 공공의 측면이 강조돼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 운영과 동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 하나 뜻대로 할 수 없는 사립대학들은 이미 존재 가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품 가격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제품 개발 및 해외 수출 등을 규제한다면 기업은 어떻게 될까? 유망 벤처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이런 사안에 해당하는 모든 규제를 받는 곳이 사립대학이다. 대학은 미래를 이끌어 가는 지성의 중심이며 자율성은 대학의 생명이다. 대학의 자율성은 단순한 행정적 독립을 넘어 교육과 연구, 인사와 재정, 그리고 학사 운영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대학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이러한 자율성은 각 대학이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원동력이 된다. 세계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 등은 모두 사립대학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뜻대로 운영하며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더욱 발전하고 있다.
자율성은 책임을 수반한다. 뒤처지는 대학은 교육 시장에서 자연히 퇴출될 수밖에 없다. 그간 사립대학들의 폐교는 실제적으로 잔여 재산을 지방자치단체에 모두 헌납해야 가능했다. 국회는 이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해 지난달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켰다. 법에 따르면 대학이 폐교를 하기 위해선 우선 교육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 행정 절차가 얼마나 복잡할지는 미지수다. 그 후에 빚을 다 갚고 교직원과 학생에게 위로금까지 지급하면 남은 금액의 15%를 설립자에게 돌려준다고 한다. 이러한 것이 과연 쉬운 절차일까? 우리는 지난날 각 사립대학이 수많은 인재를 교육시켜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시들고 있는 사립대학에는 폐교라도 뜻대로 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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