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여 종 치즈의 나라, 프랑스를 즐기는 방법[정기범의 본 아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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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제2차 세계대전 후 집권한 샤를 드골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은 1962년 “246가지 치즈가 있는 나라를 어떻게 통치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프랑스라는 나라가 지닌 문화적·지역적 다양성을 함축한 표현이었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치즈의 종류가 360여 종에 이른다 하니, 프랑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곧 이 다채로운 맛과 향을 품은 국민을 아우른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프랑스인의 치즈 사랑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이 26.5kg이다. 하루로 환산하면 약 70g이다. 한국인의 김치 소비량(연간 36kg, 하루 99g)에 견줄 만한 수치다.

프랑스 파리의 대형마트에 들어서면 30m가 넘는 치즈 코너가 눈앞에 펼쳐진다. 프랑스어로 치즈를 뜻하는 ‘프로마주(fromage)’에서 나온 말로, 치즈를 만드는 공방이나 판매하는 가게를 통칭하는 ‘프로마주리(fromagerie)’는 동네마다 있다. 그 프로마주리에서도 수십 종의 치즈가 기다린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식사의 마지막 코스로 치즈 카트가 등장해 손님이 직접 고른 치즈로 만찬을 마무리하는 풍경도 흔하다. 치즈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일상과 미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며 치즈를 맛본다는 것은 곧 이 나라의 문화와 땅을 함께 음미하는 경험이다.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카망베르’는 부드럽고 크리미한 질감에 숙성될수록 풍미가 깊어져 바게트와 와인을 부른다. 과거 이 지역 부인들이 나폴레옹에게 대접했다고 한다. 파리 근교 일드프랑스 지방의 ‘브리’는 일상에서 쉽게 즐기는 은은한 맛으로, 프랑스인의 국민 치즈라 불릴 만하다.

알프스 산맥에 자리한 쥐라에서 생산되는 ‘콩테’는 프랑스에서 가장 소비량이 많은 치즈다. 고소한 견과류 향과 짭조름한 미네랄 풍미가 화이트 와인 샤르도네와 만나면 그 조화가 더욱 빛난다. 화산 지형 오베르뉴의 ‘생 넥테르’는 깊고 고소한 향을 지녔다. 푸른곰팡이가 핏줄처럼 퍼진 ‘로크포르’는 양젖으로 만들어진 강렬한 블루 치즈다. 꿀과 무화과, 달콤한 소테른 와인과 함께할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겨울철 알프스 산간 마을에서는 ‘라클레트’가 하나의 계절 풍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어로 ‘긁다’라는 뜻을 가진 이 치즈는 불에 쬐어 녹인 단면을 칼로 긁어 찐 감자 등에 얹어 먹는다. 겨울철 다양한 먹거리가 없는 산간 지역에서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식품에 와인을 곁들여 먹던 습관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이제 전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요리가 됐다.

치즈는 지역의 자연과 기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든 결과물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며 치즈를 맛보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또 다른 여행이 된다. 단순히 맛의 향연을 넘어, 프랑스라는 나라가 가진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접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프랑스#치즈#미식문화#지역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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