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작은 가게들의 무기”… 입점업체 자생 도와 유니콘 플랫폼으로[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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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 시대의 역발상, 애덤 길드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한국은 자영업자의 나라다. 전체 취업자의 4분의 1 이상이 자영업에 종사한다. 하지만 생존율은 처참하다. 창업 후 5년 이내 절반 가까운 가게가 문을 닫는다. 치열한 경쟁, 높은 임차료와 인건비, 불안정한 경기 탓에 버티기조차 쉽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배달 플랫폼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처음에는 새로운 매출 창구가 열린 듯 보였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같은 플랫폼은 마케팅 비용 없이도 소비자를 빠르게 연결해 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현실은 정반대로 드러났다. 과도한 광고 경쟁과 높은 수수료 구조가 자영업자의 몫이 됐고, 고객 정보는 모두 플랫폼에 집중됐다. 가게는 자기 단골조차 ‘플랫폼의 고객’으로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술은 자영업자의 생존을 돕기보다 오히려 플랫폼 기업만 더 강하게 만드는 도구가 됐다.

미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임차료와 인건비 부담은 비슷하고 배달앱이 부과하는 수수료 역시 생존을 위협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우후죽순으로 확산된 배달앱은 오프라인 영업이 막힌 자영업자들에게 잠시 구세주처럼 보였다. 그러나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고 정착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결국 음식점들은 편리함의 대가로 더 강하게 종속됐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선 젊은 창업가가 있다. 미 레스토랑 운영 플랫폼 ‘오너닷컴(Owner.com)’ 공동 창업자인 애덤 길드다. 그는 빅테크의 화려한 무대가 아닌 골목길 작은 가게에 시선을 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기술은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작은 플레이어의 경쟁력을 높이는 무기가 돼야 한다.” 길드가 주목한 것은 바로 플랫폼에 종속된 자영업자들의 고통,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의 가능성이었다.

길드의 목표 “가게 자생 돕겠다”

미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난 길드는 어린 나이부터 기술과 의사소통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12세에 자신만의 마인크래프트 서버를 직접 만들고 수백만 명의 유저를 확보하며 첫 사업 경험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성장과 확장의 흥분을 느낀 동시에 누구나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회의도 함께 키웠다.

결국 고교를 중퇴하고 본격 창업자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단순히 게임 기반 수익을 좇는 삶이 아닌 ‘사람들을 진짜로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움직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강아지 미용 사업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기술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길에 눈을 떴다. 어머니의 사업을 돕기 위해 간단한 웹사이트 기능부터 고객관계관리(CRM), 예약 시스템 등을 직접 구축했고, 그 결과 일정 고객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길드에게 운명적인 계기가 됐다. 바로 그때의 고민과 실행이 오너닷컴의 시작이 됐다.

이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음식점을 진정 자신의 이름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보통 배달앱을 이용하면 가게 이름은 수많은 리스트 중 하나로만 보인다. 하지만 오너닷컴은 가게마다 전용 홈페이지와 주문 시스템을 만들어줘, 손님이 보는 화면에는 오직 그 가게의 색깔과 브랜드만 드러난다. 손님 입장에서도 ‘플랫폼에서 고른 가게’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가게’와 직접 연결된 느낌을 받게 된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고객 정보를 가게가 직접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요일마다 피자를 시키는 단골’, ‘최근 한 달간 뜸해진 손님’ 같은 정보를 가게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단골에게 쿠폰을 보내거나 오랜만에 연락을 해 신메뉴를 알려줄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비싼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손님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배달 방식도 다르다. 기존 플랫폼은 주문당 약 20%의 수수료를 떼어 가지만, 오너닷컴은 주문이 가게 홈페이지로 들어오고, 배달만 외부 기사 네트워크를 통해 처리된다. 그래서 가게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수수료로 빼앗기지 않고, 대신 건당 일정한 배송비만 내면 된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배달앱은 건너뛰고 배달망만 빌려 쓰는 구조다. 결국 손님은 편리하게 음식을 받고, 가게는 더 많은 수익을 지킬 수 있는 구조다.

이처럼 오너닷컴은 화려한 인공지능(AI)이나 복잡한 기술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자영업자가 스스로 자기 손님을 관리하고, 자기 브랜드로 다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미국의 수천 개 음식점이 이미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오너닷컴은 빠른 성장 끝에 유니콘 기업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길드의 목표는 단순하다. 플랫폼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작은 가게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자영업 공화국’ 韓이 얻을 교훈

이 이야기는 한국에도 큰 울림을 준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영업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지만 생존 환경은 매우 험하다. 물론 플랫폼 기업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분명 자영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새 고객을 연결해 주고, 마케팅이나 정보기술(IT) 인프라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가게에도 온라인 주문이라는 기회를 열어줬다. 하지만 플랫폼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자연히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면서 어느새 자영업자는 플랫폼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구조로 들어섰다. 이는 플랫폼의 악의라기보다 시장 논리와 전략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을 탓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어떻게 자영업자와 상생하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길드가 던지는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소상공인이 고객과의 관계,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만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디지털 전환 정책은 대기업이나 일부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뿌리를 떠받치는 것은 전국 곳곳의 작은 가게들이다. 이들이 플랫폼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자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 혁신이야말로 진정한 ‘포용적 혁신’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스타트업이 소상공인 시장을 단순히 낙후된 영역이 아니라 혁신의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 소상공인을 위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AI 기반 마케팅 솔루션, 데이터 관리 툴 같은 서비스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길드의 오너닷컴이 보여주듯, 기술은 대기업 전용이 아니라 작은 가게의 생존과 성장에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둘째, 자영업자 스스로도 디지털 도구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 단골 고객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패턴을 이해하며, 직접 소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플랫폼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든 것을 플랫폼에 의지한다면, 결국 협상력의 균형은 기울 수밖에 없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협상력의 법칙’처럼, 의존도가 높은 쪽이 협상에서 불리해진다.

여기에 정부의 역할은 직접 혁신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과 창업자들이 이런 해법을 더 잘 펼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다. 정부가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 같은 방식으로 지원을 제공하고 초기 시장을 열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면 민간기업이 자영업자 친화적인 혁신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 즉, 정부는 선수로 뛸 게 아니라 혁신가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주는 심판이자 서포터가 돼야 한다.

길드의 이야기는 단순한 스타트업 성공담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가게들이 자기 힘을 되찾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기술은 대기업과 플랫폼을 더 강하게 만드는 데 쓰였다. 이제는 그 방향을 바꿔야 한다. 기술이 약자의 무기가 될 때, 한국의 수많은 자영업자는 단순히 생존을 넘어 새로운 경쟁력을 얻을 것이다. 작은 가게의 힘이 모여야 한국 경제의 뿌리도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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