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범죄 떴다방’ 아지트 된 도심 공실 상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5일 23시 21분


코멘트
속이 구린 사기꾼일수록 겉으로 보기엔 때깔이 좋은 경우가 많다.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좋은 차를 몰면서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한다. 그럴듯한 명함을 뒷받침하는 화려한 사무실도 운영한다. 갈취형을 벗어나 기업형으로 진화한 조폭(조직폭력배)들도 도심에 멀쩡한 사무실을 두고 있다. 경기 침체로 빈 사무실이 남아돌다 보니 싸게 빌려 범죄의 아지트로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투자사기를 전담으로 수사하는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정상적인 회사인 양 사무실을 운영하며 비상장주식 및 코인 거래, 가짜 주식 사이트 운영 등으로 투자사기를 벌인 8개 범죄단체를 검거했다. 서울 강서, 인천, 경기 고양 부천 등 역세권 및 도심지역에서 이들이 임차한 사무실만 24곳에 달했다. 서울 강서구에선 한 건물에서 두 개의 범죄조직이 연달아 적발되기도 했다. 주로 단기 임대를 활용한 ‘떴다방’ 수법을 썼다. 보증금 없이 몇 개월 치 임차료를 한 번에 미리 내는 ‘깔세’로 사무실을 빌리고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한몫 챙긴 뒤 잠적했다.

▷서울 강남의 화려한 빌딩 숲속에도 범죄의 소굴이 생겨나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중심으로 단기 임대 사무실을 이용한 불법 금융 다단계 행위가 기승을 부려 5월 서울시가 피해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깔끔한 사무 공간과 전문 강사를 내세워 유망 스타트업처럼 꾸미고 투자한 사람들에겐 ‘센터장’, ‘지점장’ 등 직책까지 줬다. 은퇴자, 주부, 고령층 등 피해자들은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둔 멀쩡한 회사가 사기 집단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처럼 도심 사무실을 활용한 ‘범죄 떴다방’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경기 침체와 오피스 공급 증가, 온라인 중심의 소비문화 등으로 인해 상가 공실률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안정적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건물주들은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단기 임대로 사무실을 돌린다. 올해 2분기(4∼6월) 집합상가 공실률은 10.5%로, 집계가 시작된 2022년 4분기(10∼12월) 이후 가장 높았다.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며 한때 수익형 부동산으로 각광받던 지식산업센터는 전국에 40%가량이 공실로 남아 있다.

▷범죄 심리학에 ‘깨진 유리창’이라는 이론이 있다. 도시 변두리에 유리창이 한 장 깨진 집을 방치하면 행인들이 버려진 집으로 생각하고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린다는 것이다. 상가 공실을 방치하면 생활과 주거가 밀집한 도심 한복판에서 각종 범죄조직이 똬리를 틀고, 강력범죄 등 2차 범죄도 늘어날 수 있다. 트렌드에 맞게 상업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주거시설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활용법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투자사기#단기임대#범죄조직#도심사무실#공실률#다단계#상가공실#범죄심리학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