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 임금 격차는 150년 넘게 지속된 고질적인 문제다. 1869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한 서한에서 정부 기관에서 근무하던 여성들은 불공정한 대우를 폭로하며 노동자의 성별과 관계없이 동일한 노동에는 동일한 임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156년이 지난 지금도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여성은 평균적으로 83센트를 번다. 이 수치는 지난 20년간 거의 변화가 없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반에 걸쳐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성별 임금 격차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는 직업을 선택하거나 남성보다 적은 시간을 일하기 때문일 수 있다. 또 돌봄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거나 성차별적 편견과 차별을 겪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늘어나면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성 참여율만 높인다고 임금 격차가 자동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의 연구진은 조직 내 여성 비율이 높아지면 자연히 임금 격차가 줄어드는지 검증하기 위해 캐나다 내 40개 직종에 걸쳐 22년간 누적된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특정 직종에서는 여성 비율이 높아질수록 격차가 더 빠르게 줄었지만, 그 비율이 14%를 넘어서면 개선 속도가 더뎌졌다. 즉, 여성의 비율이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임금 격차의 감소 속도가 느려지는 임계점, ‘티핑 포인트’가 존재했다.
예컨대 임계점 이전엔 조직 내 여성 비율이 1%포인트만 늘어나도 임금 격차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런데 이후에는 3.6%포인트 증가해야 같은 수준의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여성 비율이 늘어난다고 임금 격차가 줄어드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이 14%라는 임계점 수치는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로자베스 캔터 교수의 ‘토큰주의(tokenism)’ 이론과도 일치한다. 캔터 교수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압도적으로 초과할 때의 역학관계를 분석해 다수 대 소수 비율이 85 대 15인 경우를 ‘편향된’ 그룹으로 정의했다. 소수 집단 구성원 비율이 15%에 도달하기 전까지 대표성이 적은 개인은 다수 집단으로부터 분리되거나 고정관념에 맞춰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이들은 개인이 아닌 상징적 존재, 즉 ‘토큰’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이 토큰들은 희소성과 이례적인 지위로 인해 더욱 눈에 띈다.
사회적, 법적 차원에서 평등 개선이나 다양성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때 기업은 조직의 평판과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이 소수 집단의 비율을 늘리거나 임금 격차를 개선하고자 한다. 그런데 비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압박감이 줄어들면 기업은 더 이상 개선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 노력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의 대표성이 향상되면 성별 형평성이 향상됐다고 성급히 결론짓고 노력을 중단한다. 마치 등산가가 작은 봉우리를 정상으로 착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긍정적인 결과도 있다. 1997년과 비교해 2022년까지 거의 모든 직군에서 임금 격차가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2018년에는 총 40개 직군 중 36개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줄었다. 하버드대 출신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로디아 골딘은 “직종 내 임금 균형을 맞추는 것이 직종별 비율을 맞추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근로자 비율이 증가하는 직업군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축소되는 경향이 더욱 뚜렷했다. 연구 기간 40개 직종 중 여성 대표성이 개선된 31개 직종에서 1997∼2018년 임금 격차는 평균 10.6%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여성 대표성이 감소한 9개 직업군의 평균 임금 격차 감소율인 5.6%포인트 대비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이는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표성 확대와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보장 정책을 모두 추진해야 함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임계점이 존재한다고 해서 임금 평등 달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과정이 예상보다 더욱 오래 걸릴 수 있다. 이에 기업은 임금 평등을 달성하려는 정책을 너무 빨리 축소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연구 결과 임금 격차는 임계점을 넘긴 후에도 더디지만,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조직은 초기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야 임금 평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디지털 아티클 ‘여성이 많아질수록 임금 격차가 줄어들까?’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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