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기용]‘법 밖의 담배’에 관한 불편한 진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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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산업2부장
김기용 산업2부장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담배는 ‘가짓과의 담배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담배의 잎을 말려서 가공해 피우는 물건’이라고 돼 있다. 담배사업법 제2조는 ‘담배란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담배사업법이 사전(辭典)보다는 구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법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 ‘규제 지체’가 담배의 정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담배의 법적 정의 현실 못 따라가

담배 업계와 전문가들은 법에 ‘연초의 잎’만으로 담배를 정의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술 발전으로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을 연초의 잎이 아닌 화학적으로도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합성 니코틴’이다. 연초의 잎에서 추출한 ‘천연 니코틴’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천연 니코틴은 연초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담배다. 반면 합성 니코틴은 성분이나 소비자들의 이용 양태는 분명히 담배지만 법적으로는 담배가 아니다.

니코틴을 액상으로 전환한 뒤 전자기기를 통해 담배처럼 이용하게 만든 것이 액상형 전자담배다. 그런데 이것도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을 이용하면 담배가 아니다. 이런 ‘법 밖의 담배’에는 흉측한 경고 그림도 없고 섬뜩한 경고 문구도 없다. 멜론 초코 민트 등 다양한 향을 첨가할 수도 있다. 제품을 여러 색깔로 예쁘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광고와 온라인 판매 제한도 없고, 누구나 사고팔 수 있으며 담뱃세 부과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네이버 쇼핑 웹사이트에서 ‘액상 담배’를 검색하면 1만8000개가 넘는 제품 판매 정보가 등장한다.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업체는 40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에서 담배 관련 논의 뒤로 밀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성 니코틴을 이용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7월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액상형 전자담배를 이용한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비율은 3.57%(2023년 1.19%), 여학생은 1.54%(2023년 0.94%)였다. 모두 전년보다 크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여학생들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관련 조사 후 처음으로 일반 담배 사용률(1.33%)을 앞질렀다. 규제의 공백이 청소년 흡연 확산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은 성분이 불투명하다는 것도 문제다. 법의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타르, 니코틴 함량 등을 표기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 제품 대부분은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위험성이 더 커지는 셈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흡입하는 물질이 뭔지 전혀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을 정비해야 할 국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2016년 합성 니코틴을 담배의 정의에 포함하자는 법안이 처음 발의됐지만 10년째 제자리다. 청소년들의 흡연 확산이 문제가 되면서 올해 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 개정안이 상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판매업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8월 임시국회에서는 “시급히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9월 정기국회에서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논란 속 여야 정쟁이 격화하면서 합성 니코틴 규제안은 아예 뒷전으로 밀렸다.

규제가 늦어지는 사이 합성 니코틴은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사 니코틴’, ‘무(無) 니코틴’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합성 니코틴의 분자 구조를 바꿔 니코틴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니코틴이 아닌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담배를 담배라고 규정하는 것부터 빨리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담배#합성 니코틴#액상형 전자담배#법적 정의#청소년 흡연#규제 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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