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택동]“내가 피해자”라는 대통령 발언의 무거움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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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논설위원
장택동 논설위원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 됐다”(12일)고 스스로 밝혔듯이 이재명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권력자다. 국회 과반 의석으로 정부를 뒷받침하는 여당, 존재감이 미미한 제1야당 등 정치 지형을 보면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에서도 이렇게 강력한 대통령이 있었나 싶다. 이런 이 대통령이 11일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과 관련해 “내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했으니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나한테 불리한 건 사실이 아닌 것도 엄청나게 언론이 쓰더니 요새는 ‘그게 아니다’라는 명백한 팩트가 나와도 언론에 안 나오더라”고도 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는 점을 가리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공모해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통령의 방북 비용을 대납하게 한 혐의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 대통령도 공범으로 기소됐고 재판은 취임 이후 중단된 상태다.

與 “대북송금 사건 조작… 공소 취소해야”

이 대통령이 본인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뒤에 이어진 “(검찰개혁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치밀하게 검토하자”는 말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화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을 보면 ‘피해자’ 발언을 흘려듣기는 어렵다. 이 사건의 공범인 KH그룹 회장 배상윤 씨는 6월 말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 및 경기도와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했고, 이달 5일엔 KH그룹 전 부회장 조경식 씨가 국회 청문회에서 검찰로부터 “‘두 사람(이 대통령과 이 전 부지사)을 끼워 맞춰야 너희들이 살 수 있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도 이달 2일 ‘과거 국정원이 이 대통령 측에 유리한 자료는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국회에 보고했다.

배 씨 인터뷰 직후 더불어민주당은 태스크포스(이후 특별위원회로 개편)를 만들어 본격 대응에 나섰고, 조 씨 증언 사흘 뒤엔 “조작 기소 실상이 드러났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여권에서는 검찰이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도 이 사건을 “희대의 조작 사건”이라며 거세게 비판했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이 대통령의 의도와 무관하게 검찰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다.

판결로 李 결백 입증돼야 뒷말 없을 것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이 이 대통령을 12개 혐의로 기소했을 만큼 집요하게 수사한 건 사실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한 점이 있을 수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시정돼야 마땅한데, 관건은 어떤 방식으로 바로잡을 것이냐다. 여권의 요구대로 공소 취소로 마무리된다면 검찰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이 대통령 퇴임 이후에라도 모든 증거와 주장을 법정에 꺼내 놓고 판결을 통해 억울함을 증명한다면 누구도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또 이 전 부지사가 주장했던 검찰의 이른바 ‘술자리 회유 의혹’에 대해 법무부가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본격적인 감찰에 나선 마당이다. 의혹이 사실로 확정된다면 재심 사유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어 여권 일각과 이 전 부지사 측에서 벌써부터 재심 청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전 부지사 판결이 무죄로 뒤집힌다면 이 대통령도 함께 결백이 입증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불필요한 논란의 싹이 남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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