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입니다” 청천벽력 통보… 뇌기능 추적하면 중증 질환 막는다[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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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뇌 건강관리 패러다임
삶 송두리째 흔드는 돌발 뇌질환… 급성-증상 방치-진단기술 부족에
조기 발견 통한 중증 진행 못 막아… 뇌 기능 변화 실시간-지속 추적 시
이상신호 조기 포착, 예방 및 치료… MRI 한계 넘어 뇌 관리 혁명될 것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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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최근 방영된 드라마 ‘트라이’의 주인공 주가람(윤계상 역)은 럭비 선수로 전성기를 달리던 중 ‘중증 근무력증’이란 병에 걸린다. 그는 절망 속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스테로이드성 약물을 복용하고 경기에 출전했다가 도핑 의혹에 휘말려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최고의 선수가 가장 좋은 기량을 가졌을 때 맞닥뜨린 병이기에 더욱 극적이지만, 꼭 운동선수가 아니라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질환은 누구에게나 엄청난 시련을 안길 것이다. 드라마는 이후 여러 역경을 겪으면서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역경이 얼마나 끝도 없는지,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잘 담았다.》

우리는 통상 질병 유무에 따라 환자 아니면 건강한 사람으로 나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진짜 건강하기만 한 사람은 드물다. 허리나 어깨에 자주 통증이 있다거나, 배가 자주 아프다거나,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기억이 잘 안 나는 일도 있고, 손이 떨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증상을 겪어도 막상 병원에 가면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 결과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과연 ‘내가 건강하다’는 진단일까? 드라마 ‘트라이’의 주가람처럼 갑작스럽게 중증 질환을 선고받거나 별 대수롭지 않아 보였던 병으로 입원한 후에 사망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질병이 급성으로 너무 빠르게 진행돼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가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다. 둘째, 증상을 느끼고도 방치하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병이 중증으로 악화된 경우다. 셋째, 현재의 진단 기술로는 중증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질환을 알아내기 힘든 경우다. 이 세 원인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작은 변화도 감지할 수 있는 첨단기술로 최대한 자주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세밀한 관측이 가능한 기술은 어떤 것일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극 중 나타난 중증 근무력증은 면역시스템의 이상으로 인해 신경계에 이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질환이다. 근육을 움직이는 것은 모두 뇌의 신호를 받아서 이뤄지는데, 그 신호 전달체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신경계 질환, 정신과 질환, 즉 뇌신경계와 관련된 모든 질환은 뇌 신경망의 기능 이상으로 인한 것이다.

뇌 신경계 질환을 해결하기 위해선 뇌신경 회로망의 기능을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뇌 건강을 지키려면 뇌 신경계 회로망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뇌에 관한 지식과 기술의 한계 때문에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뇌 기능에 대한 이해를 통해 뇌 기능을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상용화고 있다. 이는 건강관리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한순간에 “치매입니다” “파킨슨병입니다”와 같은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지 않게 될 수 있다. 세밀한 뇌 기능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뇌의 노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거나 집중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있다와 같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또 “뇌의 특정 회로 영역에 이상신호가 발견되는데, 이것이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거나 “팔다리 떨림은 뇌 특정 부분의 이상신호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등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정보가 축적되면 생활습관 개선과 맞춤치료를 통해 중증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자기공명영상(MRI)과 같은 뇌 영상기술은 뇌 내부를 정밀하게 보여 주는 창을 열어 줬다. MRI는 종양처럼 형태 변화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찾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강력한 자기장을 필요로 해 접근성이 떨어지고 일상생활에서 측정이 어려웠다. 아울러 뇌 활동을 빠른 속도로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데 한계가 있어 뇌 기능을 측정하는 도구로는 널리 쓰일 수 없었다.

뇌파 측정은 MRI보다 오래된 기술이지만, 신호에 노이즈가 많고 이로 인해 판독이 까다로워 지금까지는 수동으로 뇌전증 발작 여부를 분석하는 용도 이외에는 활용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AI)과 뇌 연구가 발전하면서 뇌파를 이해해 환자의 뇌 회로 기능을 이해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상용화되고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는 기술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조차 새롭게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며, 그 세계를 정복하는 길은 뇌 기능을 눈으로 보게 되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뇌 건강 관리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다. 내 뇌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살피고 조절할 수 있다면, 드라마 속 주가람 선수에게 각종 역경을 안긴 중증 뇌 신경계 질환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중증질환에 이른 경우라 해도 기능 회복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은 뇌 질환이란 고난이 더해지지 않더라도 많은 고행이 따르는 여정이다. 뇌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인류는 새로운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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